조회 수 : 566
2017.11.05 (11:58:57)
extra_vars1:   
extra_vars2:   

50번쩨(最終回)        그리젤다. 보록(Griselda Pollock)

 

                  훼미니스트에 의한 美術史의 파라다임의 變革

 

   그리젤다. 보록은, 린다.녹크린과 나란히 훼미니즘, 젠더의 시점에서 미술을 새로 잡아 내려고 하는 현대의 대표적 논객의 한사람이다.

    1970년대의 훼미니즘운동과 같은 시기에, 여러가지 논고를 연 이어 전개해 왔으며, 그 가장 두드려진 특징은 개별의 작품이나, 작가를 다시 읽음으로써 미술의 역사의 일부를 하나씩 새로 쓴다는 작업도 그렇거니와 오히려 전체를 포괄하는 시점의 묘색이, 그 논술 넘어 아주 큰 목표로 잡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훼미니즘의 관점에서 미술의 새로 읽기는, 70년대 기타의 훼미니즘운동과 연동하여, 우선, 역사속에 매몰되 있는 여성미술가의 발굴을 첫 단초로 삼고, 과거에 있었던 여성예술가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재능을 상찬하는데서 부터 시작했었다. 허나, 80년대 들어 와서는, 이러한 방법에 의한 여성예술가의 역사를 구축하는 것은 단순히 여태까지의 남성의 視座로 형성된 미술사에, 빠져 있는 여성 예술가를 첨가하고 [보족]하는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 혹은 여태까지의 미술사가 [백인 남성의 미술사]라고 한다면, 이를 180도 되집어서 [백인 여성의 미술사]로 바뀌 쓰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많은 휘미니스트들이 알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데체, 여성판의 레오날드나 미칼란제로를 만드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것으로는, 여성들 역시 남성의 과오를 되풀이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보록은 남성들이 여태까지 행해 왔던 일방적인 미술의 역사의 구축을 두번 다시 여성이 되풀이 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알고, 여태까지와는 전적으로 다른 파라다임의 제안이야 말로 이러한 파라독스를 분쇄하는 것임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거장][작품], 역사를 따라 줄을 세운다는 남성들이 구축해 왔던 미술사의 규범의 틀 그 자체를 새로 물어야 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보록의 시선은 이리하여 기존의 미술사의 틀의 타파와 새로운 파라다임의 제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허나 여기서 주목 해 봐야 할 것은 보록이 목적하였던 바 결코 종래의 미술사학이라고 하는 쫍은 영역속의 파라다임의 변환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록은 분명하게 그녀 자신의 연구가 [새로운 미술사]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보록은 이 경우에 미술사 라고 하는 개념조차 벗겨 내려고 하는 것이다.

   즉 보록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훼미니스트미술사]가 아니라, 복수의 [미술의 역사]에 휘미니스트로써 개입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본다면, 그것은 [문화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새로 쓰게 되는 파라다임의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라다임의 변경의 주장과 묘색은, 저작물들이 쌓일때 마다 강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는 바, 허면, 보록이 주장하는 훼미니스트의 시점의 개입에 의한 아-트의 역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보록의 주장에 의하면, [훼미니스트에 의한 개입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만드는 측에서 보는 여성의 연구이다.

    로지카.--와의 공저 [. 아트. 이데올로기] 에서는, 고대나 중세부터 시작하여, 소프니소바.앙길라소, 알데 미지아. 젠 디렐스키, 유딧트.라이스텔, 아드라이트. 라비유=귀알, 앙게리카.카프만, -. 보늘, 베르트.모리죠, 메아리.카삿트, 슈쟌느.베라톤, 레오놀.-, 메렛드.오펜하이머, 마리솔.에스코발, 에봐.헷세, 메아리. 케아리 등 현대에 이르는 수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활동이, 상세하게 다루어저 있다.

    그녀들의 작품을 진지하게 분석함으로써, 여성의 예술에 관해 한결 같이 되푸리 되던 [여성다움]이라고 하는 스테레오 타잎의 비평이, 부각되어 왔다.

    단지, 이는, 어디까지나, 여성 아-티스트의 역사가 아니고, [여와 예술과 이데올로기의 상호관계를 분석한 것]이라고 말한다.

    1981년의 [시선과 차이 훼미니즘로 읽는 미술사]에서도, 만드는 자의 입장의 여성을 연구하는 것에서는, 시점이 바뀌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여기서는, 메아리.카삿드와, 베르트. 모리죠를 중심으로, 그녀들의 작품을 19세기 후반의 근대 도시 빠리의 사회적 배경안에서 비추어 내고 [여성적인 것]이라고 하는 말자체에, 계급적 함의가 있었음을 논하고, [훼미니스트에 의한 개입이, 단순한 여성의 문제에 머물음이 없이, 계급이나 인종의 문제에 관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인상파를 특징짖는 [현대생활]을 그린 회화가 섹슐알리티를 둘려 싼 제문제와 연결되 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 해서 모더니스트의 미술사관의 偏向을 지적하고 있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더욱이 이 저작에서는, 라파엘전파가 그린 [기호로써의 여성]의 문제를, 정신분석적 해석을 통해 논하고 있는바, 이는, 최근의 보록에 특히 현저하게 접근하는 것을 뜻한다.

    여하턴, 보록의 언설의 매력은, 스스로 언급하고 있듯이, 여성의 역사를 불평등과의 투쟁의 역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여성들이 여성임으로 해서 곤난한 상황을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문제 삼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헌데, 훼미니즘의 사상은, 어떻튼 탁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사상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며, 실제 보록의 경우도, 실천가로써 70년대의 훼미니스트.-트에 관해 언급할 뿐 아니라, 가지 각색의 여성들의 예술활동의 장을 설립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넓혀 갔었다. [브릿팃시.훼미니스트 아-트 앤드 히스토리즈 넷워-]의 설립과 운영에서 보여준 공헌은, 그 일례라 할 수 있다.

    보록의 새로운 규범, 파라다임의 묘색의 의지는, 이렇게 저작과 활동의 양면에서 아직도 여전히 착실하게 의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때로는, 그 난해한 문장과 혼란스려운 이론의 전개는, 자주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허나, 경우에 따라서, 훼미니스트의 시점에 의한 미술사나, 리비죤니즘의 미술사가 빠지기 쉬운 측면에 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미술사의 틀을 넘어선 장대한 파라다임의 제안에 도전하는 보록의 자세에는, 가지각색의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약력: 옥스포-드 대학에 이어 런던대학 부속 코들트 연구소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배움. 현재 영국의 리-즈 대학예술학부 교수 및 동대학 문화연구소 소장.

주저: [. 아트. 이데올로기](로직카.-카와의 공저) 1992.   Old Mistresses: Women, Art and Ideology(1981 London: Pandora Press)   [시선과 차이] 1998 일본.   Vision and Difference – Feminity, Feminism and the

History of Art(1998 London: Routhledge)    Mary Casatt: Painter of Modern Women(1998 New York : Thames and Hudson)   Differencing the Canon : Feminist Desire and Writing of Art’s History(1999 London : Routledge)

 Looking back to the future : essays on art, life and death(2001: G + B Arts International).

   

번호 제목 조회 등록일
1462 no image 게리 스나이더 (8)
29 2018-09-16
게리 스나이더 (8) 인류의 역사는 숲을 파괴해 온 역사이다. 여기서 중국의 경우 대륙을 덮고 있던 숲이 모두 깎여서 황해로 들어가고 미대륙의 경우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를 덮고 있던 숲이 모두 벌목되어 사람들의 주택으로 변했다. 원시인들이 숲 속에서 안식처를 구했다면 현대인들은 그 숲을 베어서 안락한 집을 짓는 것이다. 사람이 번성하면서 자연과 숲은 베어서 안락한 집을 짓는 것이다. 사람이 번성하면서 자연과 숲은 자꾸 자꾸 사라졌다. 차이가 있다면 중국을 비롯한 구대륙의 숲은 오랜 세월을 두고 파괴되었고 아메리카의 숲은 너무나 빠른 기간동안 파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메리카 인들은 자신들이 일궈놓은 물질문명에 대해서 만족해 하며 한 목소리로 찬양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 얼마나 무서운 오판인가. 작은 숲이 넘어졌다. 베어 넘어졌다 아함왕과 퀴빌레의 숲들이 소나무들, 마디진 가지들 큰 솔방울과 씨 이들은 퀴빌레의 나무들, 성스런 숲 지아미의 소나무, 하이디의 전나무들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아테내의 요정들 로마의 흉한들에 의해 베어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교외의 주택지를 만들기 위해 베어지고 루터와 와이엔하우저 회사의 불도저에 밀어지고 가로톱과 사슬톱으로 켜지고 스웨덴 사람들과 핀란드 사람들 나무 꼭대기를 밧줄로 얽어 아래로 끌어당기니 나무들은 넘어지고 개울들은 질식하고, 송어들은 죽고, 길이 생기고 영호화의 재재소 성전들 100 피트 높이의 두꺼운 시커먼 연통이 그의 벌름대는 코 밑에 우리가 태운 수맥과 나뭇잎이 연기를 내뿜고 있다 The groves are down cut down Groves of Ahab, of Cybele Pine trees, knobbed twigs thick cone and seed Cybele’s a tree this, sacred in groves Pine of Seami, cedar of Haida Cut down by the prophets of Israel the faeries of Athens the thugs of Rome both ancient and modern: Cut down to make room for the suburbs Bulldozed by Luther and Weyerhaeuser Crosscut and chainsaw squareheads and finns high – lead and cat-skidding Trees down Creeks choked, trout killed, roads. Sawmill temples of Jehovah. Squat black burners 100 feet high Sending the smoke of our burnt Lives sap and leaf To his eager nose. -[작은 숲이 넘어졌다](“The Grovens are Down”) 전문
1461 no image 게리 스나이더 (7)
35 2018-09-14
게리 스나이더 (7) 산의 한 귀퉁이에서 길을 멈추고 한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이미 혼자의 생활에 익숙한 자연인이다. 그는 오로지 오후 내내 난로에 나무를 들이밀거나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보거나 황새가 날게 치며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생활은 자연속의 한적을 즐기 수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 적요한 움직임의 가운데 세상은 너무나 평화롭다. 조용히 썩어가는 나무그루터기나 계곡에 엎드린 농가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자연에 그대로 스며든 존재이다. 이 시에서의 이러한 경험이 있은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한적한 생활 속에서 생각을 거듭하던 그의 사상은 인류사적인 것으로 이어진다. 원래 그는 리드대학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동시에 전공했으며 당시 그 대학에는 이 시인의 길잡이가 될 만한 휼륭한 스승이 몇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각은 마침내 인류 전체를 생각하고 세계역사를 관조하는 거시적인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중국의 원사람들이 벌채되어 야산들은 황해바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져서 굳힌 당의 모래 위에 사각 대들보와, 통나무 기둥으로 세웠다. 센프라시스코의 주택용 표준 널빤지는 원래 시애틀 주변의 숲이었다: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지었다. 집을, 숲을, 파손시키면서 일으켜 세웠다 온 미국이 하나의 고리에 매달려 스스로를 찬양하는 인간들에 의해 불타고 있다. The ancient forests of china logged and the hills slipped into the Yellow Sea. Square beams, log dogs, on a trampled-earth sill, San Franscisco 2 x 4s Were the woods around Seattle: Someone killed and someone built, a house, a forest, wrecked or raised All Anerica hung on a hook & burned by men, in their own praise. - [그러나 너는 그들의 계단을 파괴할 것이니](“But thou shall destroy their altars”) 부분
1460 no image 의상의 화엄사상 범성계
24 2018-09-14
1459 no image 문명은 인류를 행복하게 했는가?
24 2018-09-14
文明은 人間을 幸福하게 했는가? 유-발.노아.하라리 著 [사피엔스]에서- 第19章 과거 500년간 놀라운 혁명이 연이어 일어났었다. 지구는 생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단일한 영역에 통합되었다. 경제는 指數間數的으로 성장을 이루었고, 인류는 현재, 여태 옛이야기속에서만 있었던 정도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과학과 산업혁명의 덕택으로, 인류는 초인간적인 힘과 실질적으로 무한의 에너지를 손에 넣었다. 그 결과 사회, 사회질서는 근저에서 변용됬다. 정치나 일상생활, 인간심리도 마찬가지다. 하나, 우리들은 이전보다 행복해 졌는가? 과거 5세기 사이에 인류가 축적한 풍요로움에, 우리들은 새로운 만족을 찾았던가. 무진장의 에너지자원의 발견은 우리들의 눈앞에서 끝없는 지복의 문을 열어 주었던가? 더욱 시간을 거슬려 올라가 인지혁명이후의 7만년 정도의 격동의 시대에, 세계는 보다 살기 쉬운 장소가 되었는가? 무풍의 달에 지금도 그때의 흔적을 남겨 놓은 닐.암스트롱은 3만년전의 쇼-배 동굴의 벽에 손 자국을 남겼던 무명의 수렵채집민보담 행복해 졌는가? 만일 그렇다면 농경이나 도시, 서기, 화폐제도, 제국, 과학, 산업등의 발달에는 도대체 어떠한 의미가 있었던가? 역사학자가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일은 거이 없다. 우르크나 바빌론의 주민이 수렵채집생활을 하고 있었던 조상보다 보다 행복했었던가, 혹은 이스람교의 대두에 의해, 이집트인은 나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깊어젔었던가, 더욱이, 이프리카에서 유-럽의 제 제국의 붕괴가 무수한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주었던가, 라고 하는 문제는 제기하지 않는다. 허나 이것들은 역사에 관해 우리들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현재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나 정책은 인간의 행복의 진정한 원천에 관한한 천박한 견해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 다수다. 국민주의는, 우리들의 행복에는 정치적인 자결권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자는 프로레타리아의 독재 아래서만 만인이 행복해진다고 호소한다. 자본주의자는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실현하여, 사람들을 자립과 진취의 정신을 가르키는 것으로, 자유시장만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 온다고 주장한다. 본격적인 연구에 의해, 이러한 가정들이 번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경제성장과 자립이 사람들의 행복을 증대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에는 어떤 이점이 있다는 것인가? 거대 제국의 피지배민쪽이 일반적으로 독립국가의 시민 보담 행복하고, 알제리아인이 독립 후 보담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을 때가 행복했다는 사실이 판명된다면, 어떨까? 그것들은, 식민지해방의 진전이나 국민의 자결권의 의의에 관해,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이것들은 어느 쪽도 가상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은, 여태까지 역사학자는, 이런 문제에 답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조차 피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나 사회, 경제, 사회적.문화적 성별(젠다-), 질병, 성행동, 식물, 의복등, 거이 대부분의 사태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했지만, 여기서 한숨 돌리고 봄면, 그것들이 인간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묻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장기간에 걸친 행복의 역사를 연구한 예는 그리 만치 않는데, 학자뿐만 아니고 일반인들은 대체로 행복의 역사에 관해서는 막연한 선입견을 품고 있다. 자주 있는 일로, 인류는 능력은 역사를 통해 최대의 길을 따라 왔다는 것이 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비참한 상황을 개선한다던지 원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연히, 중세의 조상들 보담 행복하며, 또한 그들도 역시 석기시대의 수렵채집민보다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다. 허나, 이 진보주의적인 견해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미 봐 왔듯이, 새로운 적성이나 행동양식이나 기능이 생활을 향상시킨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농업혁명으로 인류가 농경. 목축의 수법을 습득했을 때 주위의 환경을 정돈하고, 집단으로써 능력은 증대하였어나 많은 인간에게는 개인으로서의 운명은 보다 가혹해 젔다. 농민은 종류의 측면에서도 영양의 면에서도 열악한 식량으로 어떻게 살아 남기 위해 수렵채집민 이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병에 걸린다던지 착취당한다던지 하는 위험이 각별하게 증대하였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제재국의 확대는 상상이나 테크노로지-, 작물을 확산시키고, 새로운 교역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인류전체의 힘을 대폭적으로 증진시켰다. 허나 이것 역시 방대한 수의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카원주민, 오-스트라리아의 아포리지니에게는 길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분명히 권력남용의 험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과연 길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분명히 권력남용의 기미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에너지를 증대하면 할수록 행복해 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익한 생각이다. 진보주의의 관점에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의 일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선다. 그들은 인간의 능려과 행복도는 반비례한다고 주장한다. 능력을 가진자는 부폐함으로 인류는 가지는 힘이 클스록 진정한 필요에는 등을 돌린다. 기계적이며 찬 세계를 구축해 왔다고, 라고 그들은 말한다. 진화는 우리들의 심신을 수렵채집생활에 적합하도록 모양 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쩨로, 농업으로, 다음에는 공업으로 이행한 결과로, 인간은 본래의 성향이나 본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그럼으로 더욱 극심한 흥분이나 순수한 기쁨에는 미치지 못한다. 새로운 발명을 할 때 마다 우리들은 에덴동산에서 한층 더 멀어져 가게 된것이다. 깊은 갈망을 채우지 못하는 부자연스려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도시의 중산계급의 쾨적한 생활의 경험으로 누구던지 수렵채집민의 생활집단이 만모스를 어렵게 잡았을때 느끼던 열광적인 흥분이나 순연한 기쁨에 미치지 못한다. 새로운 발명이 일어 날 때 마다 우리들은 에덴 동산과의 거리는 한층 더 크지는 것이다. 허나 모-든 발명의 배후에서 불길한 그림자를 보게 되는 이 로망주의적인 주장은, 진보를 필연으로 삼는 신념과 같이 獨善的이다. 우리들은 안의 수렵채집민의 모습에서 떨어저 나갔으런지도 모르나,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례를 들면, 과거 2세기 동안, 근대의료에 의한 소아사망율은, 33퍼센터에서 5퍼센트미만으로 저하되었다. 이것이 의료가 없었다면 목숨이 사라젔을 아이들의 행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친구들의 행운에 크게 공헌했음에 의문을 던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中道를 가는 것이 이를 미묘하게 수정한 입장이다. 과학혁명까지, 갖는 힘과 행복에 명확한 상관관계는 없었다. 중세의 농민들은 실은, 수렵채집민의 조상보다 불행했을는지 모른다. 허나 이 수세기 동안 인류는 스스로의 능력을 현명하게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근대의료의 승리는 그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미증유의 공적으로써, 그 이외도 폭력의 격감이나 국가간의 전쟁의 사실상의 소멸, 대규묘의 기근이 거이 일소된 것을 들 수 있다. 라고 하지만, 이것 역시 단순화가 지나치다. 첫쩨, 이 설은 극히 짧은 기간을 대상으로 한 낙관적인 평가에 입각하고 있다. 인류의 대다수가 근대의료의 은혜를 입게 된것은 겨우 1850년이후의 일이며, 소아사망율의 급격한 저하는 20세기에 들어 와서의 현상이다. 대규묘의 기근도 20세기 중반까지의 일이며, 소아사망율의 급격한 저하는 20세기에 들어 와서의 일이다. 대규묘의 기근도, 20세기 중반까지이며, 소아사망율의 급격한 저하는 20세기에 들어 와서의 일이다. 1958-61년에 실시한 중국공산당에 의한 대약진정책의 기간에는 1000만-5000만의 아사자가 나왔다. 국가간의 전쟁은, 1945년 이후에 와서 가까스로 드물어 젓던 것이며 이것이 헥병기에 의한 절멸이란 새로운 위헙에 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와 같이 인류에게는 과거 수십년은 전대미문의 활금기였어나, 이것이 역사의 추세의 발본적전환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흐름이 역전된 행운의 탓인가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근대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쉽게 21세기의 서양중산계급의 시점에 서게 된다. 허나, 19세기의 웰즈의 탕광부나, 아편중독에 빠졌던 중국인, 더욱이, 다스마니아의 아포리지니의 시점을 잊으서는 안된다. 최후의 순혈의 다스마니아 선주민이 되었던 도르가니니는 아니메[심프슨]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서양중산계급의 부친 호-마.심슨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두번쩨로, 과거 반세기의 잠간 동안의 황금기에서도, 실은 장래의 대참사의 씨를 뿌리고 있었음을, 멀지 않아서 분명해 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 수삽년, 우리들은 새로운 다종다양한 모양으로 지구의 생태학적균형을 교란해 왔으며 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한정없는 과잉소비에 의해 우리들은 인류번영의 기반을 손상해 왔음을 나타내는 많은 증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최후에 가서는, 근대의 사피엔스가 이루워 놓았던 위업에 대해서 우리들이 자랑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타의 모-든 동물들의 운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만 한정된다. 질병이나 기근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주는 자만의 물질적 풍요로움의 대부분은 실험대에 놓인 원숭이나 젖소 벨트공베야-에 얹힌 병아리의 희생위에 구축되었던 것이다. 과거 2세기에 걸쳐서 이 지구라고 하는 혹성의 역사상 류예가 없는 잔인한 산업이용의 체제에, 기백억의 동물들이 종속되어 왔었다. 동물애호가의 주장의 불과 10분의 1이라도 인정한다면, 공업화된 근대농업은, 사상최악의 법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전체의 행복도를 평가함에 있어 상류개급이나 구라파인, 혹은 남성의 행복만을 계측재료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인류의 행복만을 고려한다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일 것이다. – 이장 완료. *옮긴이의 自評 하라리는 그의 저서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에서 이상의 논조로 인류의 자기위주의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태 인류문명을 거론함에 있어, 이런 폭 넚은 관점에서 전혀 새로운 파라다임로 철저하게 분석해 낸 문명론은 접해 본 일이 없던 필자에게 매우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 온다. 현대문명의 실체와 그 향방을 이런 관점에서 철저히 분석해 내는 그의 문명론은 전혀 독창적이며 참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통합되어 가면서 요구되는 관점을 제시한 것으로 참고해야 할 담론이다. 그 저변에는, 동양적 사상과 정신을 다시 음미해야 할 것으로 내다 보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의 지구의 정체를 귀납 분석해 본다면, 전적으로 새로운 파라다임이 나올것이다.
1458 no image 현대미국시인 게리 스나이더 (6)
38 2018-09-11
게리 스나이더 (6) 자연은 무언의 스승이다. 이것은 높고 장엄한 산봉오리를 보거나 적요한 호수를 바라볼 때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격동이다. 산의 한 자락에서 그는 지금 바위와 달과 계곡물을 보고 있는데 그 자연은 영원불변의 생명체여서 수벡 만년 밤공기는 고요하고 한낮의 햇살에 데워진 따스한 상태로 존재해 있다. 그리고 그 무한한 산들을 덮고 있는 것은 역시 광대무변한 하늘이다. 그리고 그는 이 무한한 자연에 비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목숨을 ‘거품 같은 생명’ 이라고 표현한다. 이 영원무변한 자연속을 거닐며 그는 생각에 잠겨있다. 인간의 하찮은 지식이나 언변이 이 영원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슨 가치가 있는가.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들이 영겁을 놓고 볼 때 사실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이러한 시들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천성이 동양적인것에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앞의 시에서 그가 원한 보름달에 감탄한 점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가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점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가 대학에서 인류하을 공부하며 인디언 문화에 관심을 집중했던 점이나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선불교에 깊이 탐닉했던 점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그의 천성이 동양적임을 말해준다. 자연물에 대한 경외와 감탄은 [페이드 벨리 위에서](“Above Pate Valley”)라는 시에서도 보인다. 여기서의 스나이더는 벌목공 겸 산림감시인의 신분이다. 정오쯤에 산길을 따라 산의 시내를 따라 2천마일을 걸었다. 그것은 그의 생업이다. 그리고 작은 소나무의 숲을 지난 뒤 스나이더는 눈 녹은 물에 의해 유지되는 초록색 초원을 만나고 거기서 태양이 곧게 떠서 반짝이고 그러나 공기는 차가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거기서 그는 무릎을 꿇고 작은 광석 하나를 소중하게 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여름 외에는 늘 눈으로 덮인 이 고산지대에서 흩어져 있는 보잘것 없는 돌이다. 그러나 이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을 지탱하고 우주의 균형을 맞추지 않는가.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취’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의 자취와 사슴의 자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리들의 자취, 스나이더는 자신의 자취를 따라온 것이다. 드릴과 곡갱이를 집어 드는 것은 생화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것은 수 만년동안 여러 생을 거듭하면서 습관적으로 해온,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벌목공의 몸으로 이곳에 와 있는 것은 전생의 무수한 인연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야성을 추구하던 그에게 있어 인락하지만 바쁘고 경쟁적인 도회지 생활이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숲 속에서의 한적한 생활의 단면은 [늑색 벨리](“Nooksack Valley”)란 시에서 볼 수 있다. 북으로 가는 여정의 저 끝에 딸기 따는 이들의 초막에서 숲과 구름 덮인 산맥까지 뻗어 있는 넓은 진흙의 들판 가장자리에서, 오후 내내 전나무 삭정이로 스토브를 지퍼며, 어두운 하늘이 더 어두워지는 것과, 황새가 퍼덕이며 지나는 것을 본다. 몸집 큰 사냥개는 먼지투성이 움막에서 낮잠이 들었다. 두 번째 자셍힌 슾의 높이 서서 썩어가는 그루터기들 눅색 강의 계곡에 납작하게 흩어진 농가들. At the far end of a trip north In a berry-pickers cabin At the ridge of a wide muddy field Stretching to the woods and cloudy mountains, Feeding the stove all afternoon with cedar, Watching the dark sky darken, a heron flap by, A huge setter pup nap on the dusty cot. High rotten stumps in the second-crowth woods Flat scattered farms in the bends of the Nooksack River……… .
1457 no image 게리 스나이더 5
42 2018-09-09
게리 스나이더 (5) 스나이더는 1947년 포틀랜드의 리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되는데 이 무렾인 열일곱 살에 미국야생지협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오리건 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마자마스라는 이름의 산악회에 가입했다. 앞의 시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그는 산악인이 되어 미국 서부의 험악한 산들을 거의 대부분 오르내리며 대자연을 호흡하게 된다. 대학을 마친 1952년부터는 또 철따라 일하며 가끔은 벌목작업도 하는 삼림 관리인이 되었다. 즉 야생지의 보호가 되어 몇 년 동안 산과 숲에서 일하며, 미 서부의 전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것은 그가 50년 말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의 경험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에게 있어 자연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였으며 자연에 대한 사랑은 점점 깊어갔다. 화강암 산등성이나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충분하리라. 아니면 바위나 작은 시내, 웅덩이 안에 잠긴 나무껍질의 조각만으로도, 첩첩이 표개어져 꿈틀거리는 산 너머 산 가는 돌 사이로 단단한 나무들 밀집해 있고 그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이 너무 밝다. 마음이 방황하는 이, 백만 번 반복되는 여름, 밤공기는 고요하고 바위는 따뜻하다. 산을 덮고 있는 가없는 하늘, 인간 세상의 모든 잡념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바위 흔들린다 이 무거운 순간도 가슴의 거품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말과 책들은 건조한 공기 속으로 증발하는, 절벽 끝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줄기 같다. One granite ridge A tree, would be enough Or even a rock, a small creek, A bark shred in a pool. Hill beyond hill, folded and twisted Tough trees crammed In thin stone fractures A huge moon on it all, is too much. the mind wanders. A million Summers, night air still and the rocks Warm. Sky over endless mountains. all the junk that goes with being human Drops away, hard rock wavers Even the heavy present seems to fail This bubbled of a heart. Words a small creek off a high ledge Gone in the dry air. -[파유트 크맄](“Piute Creek”) 부분
1456 no image 현대미국시인 게리 스나이더(4)
52 2018-09-04
게리 스나이더(4) 어린 스나이더는 당시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노동을 시작했고 그의 집안은 다른 농가의 집들보다 더 가난했다. 그리고 농장근처의 숲 속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았을 스나이더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어 했었던 어머니의 인도로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 했다. 문학과 자연세계를 동시에 접할 수 있었던 그의 유년기는 그의 문학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시기였던 것이다. 시애틀 근교에는 아직도 그 원시림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숲에 있는 것을 좋아하여 밤늦게까지 머물려 있고는 했다. 숲은 신선한 공기와 많은 시내와 온갖 생명체들을 품고 있는 생명의 보고이다. 다음의 시에서도 이 시인의 순박하고 천진한 일면이 보인다. 경사진 암반 위 햇살의 압력에 밀려 어질어질 껑충 껑충 뛰어내린다. 조약돌 깔린 물웅덩이가 노간주 그림자 속에서 소곤거리며 올해의 방울뱀 가는 혀를 날름거리는데 나는 돌 빛 조그만 또아리를 보고 깔깔대며 뛰었다 – 더위에 얻어맞고 팽팽한 암반에서 개울로 달려 내려오다 둥그런 벽 아래로 깊숲이 굴러 떨어져 머리와 어깨를 물속에 쳐밖았다. 자갈 위에 사지를 뻗었는데 – 귀가 울리고 추위로 몸이 쑤셔 눈을 뜨니, 눈앞에 송어 한 마리. Pressure of sun on the rockside Whirled me in dizzy hop-and-step descent, Pool of pebbles buzzed in a Juni;per shadow, Tiny tongue of a this-year rattlesnake flicked, I leaped, laughing for little boulder-color coil- Pounded by heat raced down the slabs to the creek Deep tumbling under arching walls and stuck Whole head and shoulders in the water; Stretched full on cobble-ears roaring Eyes open aching from the cold and faced a trout. -[물](“Water”) 부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개구쟁이 시골 아이들처럼 어린 스나이더 역시 숲 속을 뛰어다니며 이러한 장난을 즐겼을 것이다. 햇살 뜨거운 여름날 더위에 지쳐 바위가 많은 계곡의 시냇가에서 놀다가 방울뱀을 만나고 놀란 아이는 뛰어 달아나다가 물속에 거꾸로 쳐박히고 한참후에 깨어난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스나이더라는 장인을 만나 얼마나 감칠맛 나게 변화하는지. 그의 시는 매우 사실적이다. 이 시에서 무슨 의미나 상징을 찾거나 하면 그 맛이 사라져 버린다. 오직 어린 시절의 경험을 그대로 씌어진 [산책](“A walk”) 이라는 시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요일, 우리가 일하지 않는 유일한 날; 노새는 풀밭에서 방귀를 뀌고 머피는 낚시를 하고 탠트는 따뜻한 아침 태양아래 펄럭인다; 아침도 먹었으니 벤슨 호수까지 산보나 해야지. 점심을 꾸리고, 굿바이하고, 냇물의 바닥에 솟은 둥근 돌 위를 껑충거리며 암반 위를 3마일을 걸어 파유트 크릭에 도착했다 – 가파른 골짝, 방울뱀이 들끊는 빙하가 훓고 간 지역을 펄쩍 뛰어서, 웅덩이 곁에 착지하는데, 송어가 잽싸게 헤엄친다. 투명한 하늘. 사슴의 길 폭포 곁의 재수없는 곳, 집채처럼 큰 바위들, 점심을 허리끈에 묶고, 위틈을 버티고 오르다가 거의 떨어질 뻔 하지만 바위 선반에 안전하게 굴러 내려 천천히 기어오른다. 매추리 새끼들아 내 발밑에 돌 빛으로, 어어붙어 있다가 삐악거리며 달아난다! 멀리서 어미 매추리가 호들갑이다. Sunday the only day we don’t work : Mules farting around the meadow, Murphy fishing, The tent flaps in the warm Early sun : I’ve eaten breakfast and I’ll take a walk To Benson Lake, Packed a lunch, Good bye. Hopping on creeked boulders Up the rock throat three miles Piute creek – In steep gorge glacier – slick rattle snake country Jump, land by a pool, trout skitter, The clear sky. Deer tracks. Bad place by a falls, boulders big as houses, Lunch tied to belt, I stemmed up a crack and almost fell But rolled out sage on a ledge and ambled on. Quail chicks freeze underfoot, color of stone Then run cheep! away, hen quail fussing. 부분 이 시에서도 스나이더는 자신의 경험을 그냥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그 장난기와 기쁨이다. 숲에 동화된 그에게 모든 자연물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어서 그는 자신의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방귀를 뀌는 노새조차, 찬 눈길로 어루만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 묘사된 스나이더는 얼마나 발길 가벼운 건강한 청년인가. 앞의 시에서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참으로 건강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1455 no image 현대미국시인 - 게리 스나이더 (3)
57 2018-08-31
게리 스나이더(3) 그의 시를 특징짓는 첫 번쩨 요소는 숲에 대한 애착이다. 그가 성장했던 당시 시애틀 근처는 한창 사람들이 원시림들을 벌목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미국 태평양연안은 강수량이 풍부하여 숲이 생성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 울창한 원시림이 한창 벌목되는 시기가 게리 스나이더의 소년기였고 아이러니칼하게 그 역시 나중에 벌목공, 산림감시원 등의 직업을 호구하며 숲의 생태를 더욱 잘 파악하게 된다. 그의 숲에 대한 애착은 태생적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는 부모가 허락하는 한 숲에 들어가 있기를 즐겨 했고 숲 속의 온갖 생명체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를 즐겨했다. 말하자면 성자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에 흐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유랑 취미이다. 그는 젊은 시기에 거의 대부분을 유랑으로 보내고 지금은 시에라네바다산록에 은거하면서 틈만 나면 여행을 훌적 떠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그는 여행과 돈의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유조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패르시아 만까지 왕복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어쩔 수 없는 호기심과 유랑벽으로 모든 것을 떨치고 자신의 본능이 부르는 대로 살아 나갔던 그의 삶은 어떻게 생각하면 시인이 되기 위한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시선집 [무자연](No Nature)의 처음을 장식하는 [사워도 산의 전방대에서 8월 중순](“Mid-August at Sourdough Mountain Lookout”)에서 시인은 유랑자의 본색을 이렇게 드려낸다. 저 아래 골짝엔 자욱한 연기 닷새동안 장마 뒤, 무더위 사흘 전나무 솔방울에 송진은 빛나고 바위와 풀밭너머엔 새로운 파리 떼. 옛날에 읽었던 것들 생각나지 않고 몇 안 되는 친구들, 모두 도시에 있네. 양철 컵에 차가운 눈 마시며 높고 고요한 대기를 뚫고 저 아래 수 마일을 굽어보네. Down valleys a smoke haze Three days heat, after five days rain Pitch glows on the fir-cornes Across rocks and meadows Swarms of new flies. I cannot remember things I once read A few friends, but they are in cities, Drinking cold snow – water from a tin cup Looking down for miles Through high still air. 시애틀 근교에 있는 사워도 라는 이름의 산에서 시인은 아래를 내리다보고 있는데 그 정경이 우리에게도 몹시 낯익어 보인다. 옛날에 읽었던 책들이나 몇 되지 않는 친구들의 기억은 가마득한데 눈 녹인 물을 마시면서 고요한,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속진을 떨치고 산속에 사는 동양적인 은둔자의 모습이 아닌가. 이 시는 그가 살림 감시원으로 일하던 1950년대에 씌어진 것인데 한창 젊었을 그가 숲속을 뚫고 다니며 어느 산봉오리의 정상에서 허무한 표정으로 아래를 굽어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유랑 및 여행이 이 시인의 본능적 욕구라면 그것은 아마 야성에 대한 끝없는 동경 때문일 것이다. 스나이더는 자신의 유년기를 보낸 농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북미의 북서태평양 연안에 있는 한 작은 농장에서 성장했는데 그 집 근처에는 연어가 가득한 퍼젯 사운드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시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일은 유사 이래 세계에서 가장 큰 숲 가운데 하나였던 숲에서 나무들이 목재용으로 끊임없이 잘려나가는 일이었다. 그 지역의 광대한 온대 우림은 가히 엄청난 규모의 생태학적, 식물학적 현상으로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해안에 있는 미국 삼나무들과 함께, 이 숲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들의 산지였다. 이상화역 [야성의 삶] 7
1454 no image 현대 미국시인 - 게리 스나이더(2)
103 2018-08-28
게리 스나이더 (2) (1) 숲에서 얻은 영감 자연과 문학의 관계를 무어라고 정의 내려야 할까? 시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고대원시 사회의 제사와 관계된다. 그 사회의 우두머리는 바로 제사장이었고 제사의식을 더욱 엄숙히 하기 위하여 주술적인 시가 필요했고 노래가 필요했고 춤이 필요했다. 그 주술은 바로 무서운 자연, 즉 우주를 달래고 그 경외심을 표현하고 은혜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함으로 시의 시작은 바로 자연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우리의 옛 시나 중국, 일본에 있어서 자연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바로 동양화에 표현된 자연이 그것인데 깊은 산과 굽이치는 물이 있고 거기에 한적하게 어우러진 노인이나 농부는 바로 자연 동화된 인간이다. 그들은 결코 자연에 적대적이지 않고 자연에 포근히 감싸인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거기에 반하여 19세기 서양에서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연파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문명의 정신적 뿌리인 기독교 사상의 기본은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이용할 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인간의 문명이 일어난 이래 자연은 끊임없이 파괴되어 왔으며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들은 인간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식탁을 풍성하게 해왔다. 원시시대의 그 무섭던 자연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에게 정복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고 그 속도가 가속화된 것은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다음부터이다. 사람들은 그 뛰어난 두뇌로 기계를 만들어내어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의술의 발달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인구는 자연에게는 거대한 재앙이었다. 숲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그 속에 살던 무수한 생명체는 몰살되었다. 동화 [헨젤과 그래탤]에 나오는 무서운 숲은 이제 사라졌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던 풍성한 생명의 보고였으나 백인들이 상륙한 이후부터 파괴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반부터 그 속도가 가속화되었고 지금은 복구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가. 자연과 친숙하게 살아가던 원주민들은 수천만이 학살당했고 그것은 지금 그들의 원죄의식으로 남아 있다. 시이튼의 동물기, 헤밍웨이의 단편이나 쿠퍼의 소설,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소설 등에서 아메리카의 자연은 참으로 장엄하게 그려져 있으나 이제 그것은 거의 원형을 잃었다. 이 지역의 자연을 포함하여 지구상의 모든 자연이 회복불능의 지경이 되어서야 자연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고 문학에서는 생태문학이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고 되었다. 게리 스나이더는 이런 면에서 하나의 선각자요 실천가인 셈이다. 게리 스나이더는 1930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나 곧 이주하여 시애틀 북쪽 레이크 시티 근교의 농장에서 가난하면서도 자연에 있어서는 풍성한 소년기를 보냈다.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10년에 걸친 치열한 선 수행을 했으며 현재는 캘리포니아 중부 네바다시티 근처의 시애라네바다 산록에서 은거하고 있다. 그는 일생을 유랑자처럼 떠돌았고 그것은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그 영혼의 갈증에서 비롯된다. 대학을 마치고는 한때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매료되었고 그것은 뒤에 동양의 선불교에 깊이 몰두하는 한 계기가 된다. 이러한 시도는 서구의 물질문명에 염증을 느끼고 동양의 신비사상에 심취하여 티벳으로 네팔로 발길을 돌렸었던 1950년대 비트제너레이션의 움직임이다. 텁수륵한 얼굴과 긴 머리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허무한 표정으로 유랑하는 젋은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스나이더는 당시 미국 서부의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시인이였다.
1453 no image 현대 미국 시인- 게리 스나이더
94 2018-08-26
게리 스나이더( Gary Snyder) - 서부의 방랑시인 시선사 출판: [현대미국시인 7인의 시] 에서 序(prelude) 1930년 5월 8일 해럴드 스나이더와 로이스 사이에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곧 태평양의 북쪽으로 이주하여 위싱턴 주 시애틀 북쪽에서 작은 목장을 시작했다. 1945년 게리는 세인트 헬렌 산을 등정하였으며 1년후 등산클럽 마자마스(Mazamas)에 가입한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등산을 계속하고, 장거리 하이킹을 해왔다. 1947년 그는 링컨 고교를 졸업하고 리드대학에 입학한다. 대학의 문학잡지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한다. 리드에 있는 동안 그는 동료 시인 필립 훼일런이나 류 웰치를 만난다. 1951년 스나이더는 영문학과 인류학의 학사학위를 받으며 졸업한다. 1951년 여름을 오리건 폭포의 동측에 있는 원 스프링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벌목공으로 일한다. 그 여름 작업을 마치고 그는 인디에나 대학까지 히치하이킹으로 가서는 거기서 인류학 대학원 과정을 공부한다. 1952년 봄까지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립 웨일런과 함께 살면서 생계를 위하여 잡다한 일을 했다. 1950년대 초반 동안 스나이더는 태평양 북부 연안의 숲과 산들을 자주 방문했다. 웜 스프링 목재 회사의 용원이나 산불 감시원으로 일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1953년에서 55년까지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동양어 학과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캠커스 곁의 작은 오두막에 살았다. 스나이더가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와 잭 캐루악(Jack Kerouac)을 만난 것은 버클리에 체류하고 있을 때였다. 1955년 10월 그는 긴즈버그와 생프란시스코의 식스 갤러리에서 시낭송회를 주최했다. 스나이더, 긴즈버그, 필립 레이먼셔(Philip Lamantia), 마이클 맥클루어(Michael McClure), 그리고 필립 훼일런이 있었고, 케니스 랙스롯(Kenneth Rexroth)이 행사의 마스터로서 공연을 했다. 1956년 초반기에 스나이더는 밀 벨리의 작은 오두막으로 은거하고 케루악도 나중에 여기 합류했다. 스나이더는 이 집을 일본말로 ‘말 오두막’(Horse Grove Hermitage)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풀뜯는 말이 있는 근처의 목초지 때문이었다. 1956년 5월 스나이더는 일본으로 떠나는데 불교사찰 쇼코쿠지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957년에서 1958년 4월까지 8개월 동안 유조선의 엔진룸 청소부로 취직을 하게된다. 그리고 9개월을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보낸 후 59년 초 교토의 대덕사로 오다 셋소 노사 밑에서 선을 공부하러 떠난다. 이 기간 동안 스나이더의 첫 시집이 교토에서 출판되어 배포된다. 1960년 존 카이거(Joanne Kyger)와 결혼한다. 1961년부터 62년초까지 이 부부는 스리랑카, 인도, 네팔을 여행한다. 그들은 뉴델리에서 앨런 긴즈버그와 합류하며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난 후 1964년 5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다. 1965년 스나이더와 카이거는 이혼을 하고 그해 10월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1967년 8월 6일 마사 우에하라와 결혼한다. 1968년 4월 스나이더의 첫아들 카이가 태어난다. 가족은 1968년 12월 일본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는다. 둘째 아들 겐이 1969년에 태어나고 스나이더는 두 아들, 아내, 친구들과 함께 네바다 시티 근처의 시에라내바다의 발치에 자리 잡는다. 학생들과 친구들과 함께 집을 지어 커킷디즈(Kirkitidizze)라고 이름 붙인다. 1989년 스나이더와 우에하라는 이혼한다. 그의 집 근처에서 마하야나 승가를 연다. 1970년대 스나이더의 집헛간에서 처음으로 집회가 열렸어며 1982년에 법당(zendo)이 지어지고 그리로 옮긴다. 키커디즈를 그의 기지로 삼고 스나이더는 낭송하고 토론하면서 넓게 여행을 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많은 여행을 했고 그의 강연여행은 1981년 호주에서도 있었다. 1982년에는 잉글랜드, 스웨덴, 스코틀랜드에도 갔다. 1990년에는 대만, 1992년에 스페인, 1995년 아일랜드, 1998년 그리스와 체코, 2000년 일본과 한국, 2002년 일본과 프랑스, 2003년 다시 일본으로 다녔다. 1991에 역시 일본계 이민 2세 캐럴 코다(Carole Koda)와 결혼하는데 키컷디즈의 형식대로 결혼했다. 그녀는 작가였고 이미 두 딸 미카(Mika)와 로빈(Robin)을 가지고 있었다. 1968년 스나이더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빗 캠퍼스의 교수가 된다. <자연과 문화>라는 프로그램을 창시하는데 한 몫을 하며 야생과 창작을 위한 모임인 <야생의 기술>이라는 조직을 주도했다. 학술원에서 스나이더를 데이빗캠퍼스의 최고 영예인 2,000 교수 연구 강사로 임명된다. 2,002년에 은퇴한다.
1452 no image
93 2018-08-21
1451 no image
100 2018-08-21
 

17598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이박골길 75-33 | Tel. 031-673-0904 | Fax. 03030-673-0905 | Email: sonahmoo@hanmail.net

Copyright ⓒ 2002- Alternative Art Space Sonahmoo all right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