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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point -▲▲로부터’ - 의미 있는 시공時空의 사건을 꿈꾸며

 

 

도 병 훈(작가)

1.

21세기 들어서도 세계는 끊임없는 갈등으로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고, 19세기 말 이래 숱한 제국주의의 침략 사건으로 점철된 동북아의 질서도 재편되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한반도는 아직도 분단이라는 냉전 체제의 유산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역사, 경제, 문화, 종교, 환경, 예술 등 이 모든 영역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우리의 문제는 곧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니, 국지적이고 미세하게 보이는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근대 이후 극히 짧은 시간에 개발이란 명목아래 범지구적으로 자연이 훼손되어 왔으며, 그 부작용으로 기후 변화까지 초래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례없이 급속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이전의 모습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생긴 곳이 많다. 자연은 스스로의 복원력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자연을 생성하고 있지만 우리는 도처에서 그 상흔과 마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과 남해안의 대부분은 코흐 눈송이를 닮은 프랙탈(fractal)’한 비-유클리드적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무수한 주름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다. 주름 속 주름인 갯벌 뻘밭의 무늬들은 시간의 미립자들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서해안 곳곳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땅이 되었다. 너무도 짧은 시간에 실로 장구한 시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렇게 바다가 육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한 때 이곳에 깃들었던 정주민들은 쫓겨나고 그들의 삶터인 자연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 이 대규모 파괴의 명분은 바로 새 땅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형도 역시 이러한 새 땅을 위해 비워진 땅으로 이제는 더 이상 섬도 아닌, 두 동강난 돌산으로 남아 있다.

 

자연이 무조건적 지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자연과 개발은 흑백 논리로 재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환경또는 환경보전이라는 미명으로 감당할 문제도 아니다. 환경 문제는 여러 복합적인 측면이 얽혀 있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시대는 무엇보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 자본이 특정 계층이나 집단만의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버리면 환경 문제도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 문화 선진국일수록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조성하려는 실천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산업화 시대의 낡은 유산이나 개발의 잔재를 무조건 없애는 대신 재활용해서 공적 의미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가치를 지닌 새로운 삶과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연과 장소에 대한 심미적 감성이나 예술적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창조적 가치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매홀환경미술제 Cross point -▲▲로부터매홀자유창작네트워크에서 추진된 것이다. 매홀(買忽)은 수원, 화성, 오산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그 의미는 을 뜻하고 ()’이므로 물이 많은 땅이란 뜻이다. 수원의 프로젝트그룹 문화 복덕방’, 오산의 스페이스 까마귀’, 화성의 스페이스 알을 거점으로 참가한 제3세대 프로젝트 대안공간인 매홀자유창작네트워크는 물리적 문화공간의 역할을 넘어선 문화생산자인 작가와 향유의 주체인 대중을 연결하는 소통과 진화를 꿈꾸며 결성되어, 로컬 문화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하는 단체이다.

이들은 작가와 미술사학, 고고학, 생태인류학, 향토사학, 미학, 예술비평, 큐레이터, 공연, 문학, 음악, 전시기획자(정형화 되지 않은 도전하는 젊은 작가 혹은 그룹과 나름의 방식과 담론을 통하여 저변 확대와 진화의 과정에 들어선 작가 그룹)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합하여 그들 고유의 인식 지형과 작업 공간을 네트워크화 하고 있으며, 지역을 넘어선 문화예술전반의 실천 가능한 대안 행위를 모색해왔다. 이들은 구체적 활동으로 201412월 수원 매향동 빈 집+일파문화공간에서 <예술을 믿습니까?> 전을 개최하였다. 이들이 전시 주 공간으로 삼은 빈 집은 자본주의 시장의 전시 공간인 화이트 큐브와 극점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식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어 20151, 서해 시화호 내 형도를 답사하면서 미술로 가능한 새로운 방식의 접점을 탐색한다. 그리고 발상에서 시작하여 전시회를 기획하고 국제전으로까지 확장하는 계기를 금년 초에 마련하게 된다.

 

2.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전 국토의 70%가 산인데다 그 형세가 다채롭고 주름이 많다. 그 중에서도 서해안은 남해안과 함께 해안선이 매우 복잡하다. 육지에 바닷물이 들어오면 산줄기는 반도나 []’이 되고, 골짜기는 ()’이 된다. 일반적으로 곶은 반도보다 규모가 작다. 또한 사취가 발달하면서 곶이 형성되기도 한다. 또한 곶과 같은 의미로 ()’과 같은 한자도 썼으며, (((()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등에는 월곶(月串)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월곶은 달곶이(달고지)가 한자로 표기된 곳이다. ‘은 산의 옛말이다. , 월곶은 산이 돌출한 곳을 의미한다. 형도의 ()’은 저울 형자이다. 바닷물의 주기적 파동(波動), 즉 조수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저울 역할을 한 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명의 역사는 이 땅의 사람들이 자연을 인식해온 세계관을 드러낸다. 주름이 많은 지형은 사람의 감정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감정이 풍부하고 흥과 한의 양극 사이에서 역동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이러한 지형의 특성도 간과할 수 없다.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인 주름 많고 굴곡진 비-유클리드적 공간이 우리 전통 예술의 프랙탈한 역동성과 구성짐의 특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형도 지역은 여러 측면에서 헤아릴 수 없는 다층적 공간이다. 그리고 이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이 땅에서 그 어느 지역보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한 사연을 많이 간직한 역사적 질곡의 땅이다.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원래 마한과 백제의 땅이었다가 고구려 땅이 되고 잠시 백제가 탈환했으나 곧 신라의 땅이 되었다. 이 같은 이 지역에 대한 치열한 쟁탈전은 신라가 이곳을 점령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신라는 이 지역 덕분에 삼국통일의 거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형도 아래로 깊숙한 만이 있는 지역이 바로 옛 당항성(唐項城)이 있던 곳이다.

 

우리의 고지도인 <청구도><대동여지도>를 보면 이 지역은 몇 개의 큰 섬과 작은 섬이 바다에 떠 있다. 어도와 대부도, 선감도 등이 보이지만 형도란 지명은 청구도에도 대동여지도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위치상 결오리도나 그 주변 섬이 형도로 추정된다. 이러한 고지도를 들여다보면 우리 선조들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산과 물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특유의 지세와 당대의 사회 문화, 역사를 알 수 있다.

청구도와 대동여지도를 보면 형도 바로 아래 해문(海門),’ 바다의 관문이란 지명과 함께 중국과 왕래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한 남양이란 지명이 크게 표기되어 있다. 특히 청구도에는 남양의 서쪽 해문과 청명산 사이에 고당성(古唐城)’이라고 적혀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고당성이 표기되지 않고 남양지역 왕모산, 청명산 아래 작은 산, 비봉산 등에 옛 성을 뜻하는 둥근 구멍을 산 모양의 형상 가운데 표시해 놓았다. 그런데 현재 학계나 이 지역에서는 남양의 동쪽에 위치한 비봉산(현 구봉산)의 고성을 당항성으로 보고 성까지 복원해놓았다.

그리고 산꼭대기 위에 삼각 뿔 형태의 기호가 있는 곳은 통신 역할을 한 옛 봉수()대를 뜻하는데, 어도 근처 해운산과 염불산에 이 기호가 보인다. 형도에도 산꼭대기에 봉화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청구도에도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원효(元曉,617~686)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땅이다. 원효는 7세기 이전 인도와 중국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던 불교사상을 종합함으로써 최전성기를 이룬 7, 8세기 동아시아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가였다. 7세기 중엽 이전의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의 수용 단계였다.

5세기 중국 남북조 시대의 역경승인 구마라지바(鳩摩羅什 343~413)에 의해 전해진 나가르주나(龍樹150년경-250년경)의 불교 이론은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연기(緣起) 중심의 ()’사상이었다. 즉 유()에도 무()에도 집착하지 않은 공()인 중()의 지혜, 이것이 나가르주나가 말한 중관론(中觀論)이었지만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능동적인 니힐리즘에 이르지는 못했다. 중관불교 뒤에 중국에 수입되었던 불교가 바스반두(世親,5세기경의 인도 학승)의 유식(唯識)불교였다. 이 사상은 감각기관에서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고 보고 여덟 개로 인간의 식을 정세하게 나누어 인류의 철학적 사변에서 인간의 마음에 대해 가장 정밀하고 심오한 분석을 행했다고 평가된다. 그렇지만 식 중 최고의 식인, 알라야식도 어두운 업()의 그림자 밑에 두었다. 6세기 말에는 지의(智顗,538-597)에 의해 천태학(天台學)이 세워지지만 인간의 악, 번뇌의 깊이를 응시하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6세기, 7세기에 걸쳐 민중 사이에 유행했던 정토교는 이 세상에 대한 절망감으로부터 미래의 아미타 정토를 꿈꾼 사상이었다.

이와 달리 7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의 불교는 세계와 인간을 긍정하게 된다. 이 무렵 인도와 중국 초기 불교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 던지는 선구자 역할을 한 이가 신라에서는 원효이며, 중국에서는 원효보다 한 세대 아래인 법장(法藏, 643~712)을 꼽을 수 있. 원효가 도달한 사상적 차원은 스펙트럼이 다양한 그 삶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661(문무왕 원년) 원효는 의상(義湘,625~702)과 함께 중국 당()의 현장(玄奘602~664)이 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기 위해 바닷길로 당나라로 떠나고자 이곳 당항성 근처에서 땅막(土龕 움막)인줄 알고 무덤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어젯밤 잠자리는 땅막이라 편안했는데 오늘밤은 귀신의 집(무덤)에 의탁하니 마음이 어지럽구나. 알겠도다!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삼계(三界), 즉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 나는 당에 가지 않겠다!(前之寓宿, 謂土龕而且安, 此夜留宵, 託鬼鄕而多崇, 則知! 三界唯心, 萬法唯識心外無法, 胡用別求? 我不入唐!)’ 원효는 이 사건 이후 분황사로 돌아가 이전의 불교사상을 종합한 사상을 제시하였다. 신라에서의 불교 공인 144년 만에 스스로 주체적 위상을 갖는 출발점이 이곳 당항성 지역이었던 것이다.

 

원효 사상의 핵심은 큰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인 일심(一心)’으로부터 여러 개로 흐르는 지류와 강같은 서로 다른 주장이나 신념을 화해시키는 화쟁(和諍)’ 또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이며, 이를 바탕으로 무애(無碍)’, 즉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원효 사상을 대표하는 핵심어인 일심대승기신론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해석한 그의 저서인 대승기신론 소· 별기에 잘 표명되어 있다. 대승기신론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을 마음이 맑은 지정(智淨)’과 헤아릴 수 없는 작용을 한다는 불사의업(不思議業)’ 두 가지로 본다.

원효는 대승기신론 소·별기에서 욕망이나 유행에 휩쓸리는 마음(무명)과 자성, 즉 청정한 마음(진여)을 차이를 두어 해석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그 둘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대승기신론과 원효에 의하면 무명의 존재는 바다의 원래 모습을 망각하고 파도만을 바다로 보는 것과 같다. 원효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바다가 고요하고 잔잔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와 파도는 서로 나눌 수 없는 세계이다. 오히려 바다의 성질을 알 때 미풍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물결 그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승기신론에서의 불공(不空)’은 공()의 부정(否定)이다. 이에 대해 원효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를 부정하고 공()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과 남()이 동체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이고, 거울이 만 가지 형태를 다 용납함과 같다.

 

원효의 교학은 유식의 심식설을 바탕으로 인간의 마음을 치밀하고 정교한 논리로 분석하는데, 이러한 논리적 분석의 치밀함은 그가 지은 판비량론에 잘 나타난다. 원효는 언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인간들이 이론이나 세계에 대해 집착하고 논쟁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언어가 지닌 이중성, 즉 진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왜곡할 수도 있으므로 분열된 생각 이전의 상태인 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면 누구나 붓다(buddha),’ 바르게 아는 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마음의 근원이 넓은 마음, 일심(一心)’이다. 원효에 따르면 일심은 모든 법, 즉 모든 존재와 현상의 근거이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을 해석하면서 일심에서 보면 미혹되고 망령된 생각이 사라진 진여(眞如)’와 상대적이고 현상적인 생멸(生滅)’이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마음의 근원을 회복한다는 것은 차별 없이 만물을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원효는 일심을 열반종요에서는 일미(一味), 한결같은 맛으로도 설명한다. 그러므로 세움()과 깨뜨림(), ()과 빼앗음(), 같음과 다름, 있음과 없음, 가운데(離邊)와 가장자리(非中), 분열된 마음이 사라진 일심과 일미의 세계가 바로 그가 꿈꾸는 정토(淨土)이다. 이는 현상의 다양성이나 차이를 부정한 전체주의적 획일성을 지향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타자의 관계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라는 극히 현실적 메시지이다.

 

모든 것을 융합하고 아우르는 화쟁 사상과, 특정한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는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 그리고 논리와 주관과 객관을 부정한 직관적 실천인 일미관행(一味觀行)’이 원효 사상의 주요 핵심인 것도 이러한 해석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원효의 사상은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불교사상가인 법장과 징관(澄觀,?~839) 등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까지도 그 파장은 진행형이다.

삼국유사에서 원효를 다루는 제목이 원효불기(元曉不覊 ; 어떠한 굴레와 걸림이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산 원효라는 뜻임)’인데서 알 수 있듯, 그는 단지 사상가에 머물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인도와 동아시아 문명 간의 사상적 교류의 정점에서 다양한 주장을 일심, 즉 넒은 한 마음으로 회통시킨 원효는 나아가 표주박을 두드리고 무애가를 노래하며 춤을 추는 해학적 흥과 풍류 정신의 실천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자유롭고도 흥취 넘치는 예술가적 삶의 면모로 해석할 수 있다.

 

3.

리좀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어느 대학의 한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 옆을 스쳐갑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죽고,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근현대 주요 사상가들은 인간의 지각과 직관이 미리 정해진 관념이나 규범적 진리 아래 종속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 이후 근현대의 사상가들이 중요하게 다룬 주제 중 하나는 예술의 힘이었다. 현대예술은 그 특성상 개념과 가치에 동화되지 않은 채,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의 얼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근현대 주요 예술가들은 예술에 대해 개념 체계들이 갖는 은유적 기원을 상기시키고 이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근대 이후 예술가들이나 예술작품의 존재 방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으며, ‘미의식도 변천되어 왔다. 현대미()술은 근대미()술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제기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존재 방식의 현대미술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미술은 상업자본주의 상품이나 의미 없는 행사의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려는 치열한 정신이 요구되며, 그만큼 다차원적이고 지속적인 실천만이 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미적, 예술적 가치는 지역과 시대 상황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어 그물이 만들어지고 그 그물은 끊임없이 출렁이며 새로운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는 불교 화엄사상 용어로 표현하면 중중무진(重重無盡, 무한히 다층적이고 복합적의 구조)’으로 중첩되어 있고 우리는 그 구조를 이루는 한시적 존재이다. 이처럼 단일한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개의 사과는 저 혼자 가지 끝에 달린 열매가 아니다. 모든 것은 구조다. 은하단이 거대한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은하들이 모여 있는 것이라면, 원자도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 상상할 수 없이 광대한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 있다. 원자핵이 수원 행궁 앞 축구공이라면 전자는 서울시청 앞에 떠도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차원에서 크기와 거리는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다. 온갖 크고 작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극소량의 원자와 나머지 대부분의 허공으로 변화하는 공간이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단일한 시점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없다. 우리 인간 역시 아무 의미도 없는 티끌이며, 동시에 우주 전체만큼이나 크고 복잡한 존재이다. 우리는 허공에 부유하는 새털같이 가벼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태산보다 무거운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 미술제가 기하학적 시점(a geometrical point of time)의 단발적인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급속하게 변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채 멈추어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만남과 인연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항상 좀 더 나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 파괴와 자연이 공존하는 형도 지역에 축적되고 집약된 온갖 문제 상황은 이 지역만의 특별한 역사성과 함께 이제 우리 예술가들의 국제적 화두가 되었다. 간척 사업 이전의 형도 지역이 한반도의 그 어떤 곳보다 주름과 굴곡이 많은 비-유클리적 공간이었음에도 불과 수 십 년 만에 유클리드 공간으로 변모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어떤 경우에도 다시 이전의 공간으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없는 자본을 투입하는 개발의 논리만으로 이곳의 자연을 훼손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개입이나 경제 논리만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정치는 정권 획득이, 경제 논리는 이익이 우선이지만 참된 예술가들은 이러한 특정 집단이나 계층, 또는 자본을 위한 차원을 넘어 더 나은 공생과 협력을 위한 본 프로젝트에 동참한다. 문화예술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일 때 좀 더 온전하고 종합적인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질의 일부에서 일어난 주기적 진동이 퍼져 나가는 현상인 파동은 비단 물리적 현상에 국한되지 않으며, 우리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해의 역사, 문화적 상징성을 지닌 형도가 다시 한 번 풍성한 사유의 파장의 중심, 즉 현재의 교점이 된다면 이미 지워져버린 주름진 세계의 이면을 사라지기 전에 밝힐 수 있다. 따라서 참여 작가들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타인과 환경에 대한 저마다의 교류를 통해 그 자신의 진폭을 확장할 수 있다. 뜻 있는 예술가들이 한 마음으로 협력한다면 그 시너지가 능히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에까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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