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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8 (11:21:36)
조선 청화백자의 역사적 층위와 아름다움의 이면 만추의 계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 청화, 푸른빛에 물들다’전을 보았다. 한‧중‧일 명품 청화백자(Blue and White Porcelain)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로, 수 백 년에 이르는 동서의 역사와 문명의 무늬로서 희디흰 색과 맑은 청색이 어우러져 더욱 빛나는 듯했다. 조선시대의 청화백자들은 생몰연대 조차 모르는 이름 없는 도공들이 빚어낸 것이었다. 근대이후 현대미술에서는 지나치게 우상화된 몇몇 예술가들의 예술작품만이 주목과 찬사의 대상이 된다. 작가를 브랜드로 내세운 상품으로서의 예술작품인 것이다. 이 때문에 청화백자든 현대미술이든 표면만 보아서는 자신의 취향을 전제로 그 형태나 색을 보게 된다. 푸른색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에는 금은이나 보석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은 색채였다. 그림에서의 고급 청색은 청금석에서, 도자기의 청색 안료는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산화 코발트(cobalt)에서 채취했다. 블루 모스크로 유명한 이란의 이스파한은 이슬람 문명에서의 청색의 위상을 알게 한다. 이슬람에서 푸른색은 물을 상징한다. 동아시아에서 코발트를 ‘회청(回靑)’이라고 했던 것도 이슬람 지역에서 생산된 안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안료는 철, 코발트, 동(銅)이 있다. 코발트는 불의 온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며, 1300도에 이르러야 선명한 청색을 띠게 된다. 그러나 페르시아에선 청화백자를 만들지 못했다. 그 지역의 흙은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형체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청화백자는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결국 이슬람과 중국 문명의 만남에서 청화백자가 탄생했다. 그것은 중국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 교류와 융합의 산물이었다. 이처럼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청자를, 이어 백자까지 만들었는데, 백자는 중국 원나라 때 청화백자의 탄생을 통해 또 하나의 기술 정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18세기 이전까지 중국과 대등하거나 어떤 관점에서는 그 미감을 능가하는 청화백자를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청화백자의 대표적인 문양은 당초문(唐草文)이다. 이 무늬는 이집트 무덤에서 시작되어 그리스 로마를 거쳐 이슬람 문화와 융합되어 이어지면서 마침내 중국 청화백자의 주된 문양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청화백자를 청화(靑華)로, 일본에서는 청화(靑花)로 쓴다. 조선에서는 청화(靑花)· 화자기(畵磁器)·화사기(畵沙器)·화기(花器)·화기(畵器) 등으로 표기했다. 왕실의 전유물로 만들어진 조선 전기의 청화백자와 종류와 용도, 형태가 다양해지는 조선 후기 영‧정조시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는 우리 전통문화예술의 높은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중국이나 일본의 청화백자는 그 기술적 기교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와 달리 조선의 청화백자는 중국 청화백자를 그대로 모방한 듯한 일부 조선 전기 청화백자와 조선 말기의 장식적 문양이 과다한 청화백자를 제외하고는 대개 넉넉한 여백, 맑고 투명한 느낌과 그리고 어중간한 듯한 틈이 느껴질 정도로 모호한 특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조선의 청화백자는 함께 전시된 중국의 청화백자나 일본의 도자기의 그 완결된 듯한 세공품의 이미지와 달리 어딘가 비어 있고 불완전하다. 전통한옥의 공간이나 사방탁자 위와 같은 장소, 구부러진 매화 한 가지와 더불어 완성되는 관계의 미학이 반영된 것이다. 반복적인 그림의 소재들인 당초문, 대나무, 소나무, 모란, 용, 불수감(佛手柑, 부처의 손과 비슷하게 생겨 다복을 상징함), 박쥐 문양 그림들이지만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명품들의 경우, 한 번 그은 붓질마다 드러나는 맑은 느낌과 더불어 그림을 그린 사람의 숨결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국보 222호인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18세기에 만든 석류 분재 무늬 항아리,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의 청화백자 풀꽃무늬 항아리 등이 특히 그러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 느낌을 감성적 언어로 표현한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오르듯, 조선 청화의 푸른색은 그 아득한 느낌만큼이나 다가갈 수 없는 그리움, 또는 심연의 색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이런 차원에서 청화백자에 대한 동서고금의 각별한 기호는 인간의 원초적, 무의식적 동경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생 평면과 깊이 사이에서 공간적 심도를 추구한 폴 세잔에게 푸른색은 사물의 근본적 존재이자 핵심이었다. 그래서 푸른색은 그가 만년에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의 주조색이다. 온통 기교적이고 장식적인 청색 문양으로 가득 채운 조선말기 청화백자의 특성은 당대 역사의 자화상이다. 시대적 정신이 빈곤할수록 그러한 결핍은 기교와 장식으로 채워진다. 아무리 기교와 장식이 뛰어난들, 그것이 주는 감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마음을 포함한 정신과 물질이 그 바탕이며, 근원적 감동은 바로 이에 대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청화백자들과 함께 푸른색을 주조로 한 몇몇 현대회화들을 볼 수 있었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작가인 수화 김환기를 제외하고 그들의 그림들이 과연 청화백자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수화 김환기의 그림도 청화백자보다는 달 항아리 같은 백자의 이미지를 ‘소재’로 시대적 감수성을 표현한 경우가 많다. 그의 청회색조 유화도 조선 청화백자 특유의 색과는 다른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아무래도 이번 전시회에서 청화백자와 연관 지은 현대회화는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느낌이다. 지난 90년대 초반 이래 내 그림의 주조색은 청색이다. 대개 세로 2m, 가로 4~6m에 이르는 대형의 두껍고 거친 광목천에 담묵(淡墨)과 파묵(破墨)에 연원을 둔 우연적 흔적을 배경으로 흩뿌려진 점이나 몇 가닥의 굳센 선들로 세상의 변화와 나의 내면적 마음과 생명력(힘)을 함께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왜 한 결 같이 청색인가? 흰 바탕, 또는 약간의 황색 끼의 화폭을 바탕으로 깊은 느낌의 청색만큼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감각을 일깨우는 색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청색에 대한 나의 선택은 매우 까다롭다. 당연히 표준 색상에는 없는 색깔이다. 코발트 불루도 울트라마린도, 푸르시안 블루도 번트 엄버도 아니며, 반 고흐의 청색도, 이브 클랭의 블루도 아니며, 전성기 조선 청화백자의 푸른색과도 다른 특성이 있다. 그러나 분청사기, 조선 청화백자, 달 항아리 같은 순백자에 대한 관심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숱한 감상의 기회를 가졌으므로 무의식적으로 청화백자의 색조와의 만남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왔다. 샛노란 은행나무 잎들 사이로 유난히 하늘이 높고 푸르렀던 이 가을, 시대와 계층과 신분에 따라 향유하는 계층이 달랐지만 한‧중‧일의 청화백자는 저마다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감성을 드러내는 매개물로 보였다. 무엇보다 당대를 대표하는 조선 청화백자의 흰색과 푸른색에서 세상사 온갖 변화와 다채로움을 무색하게 만드는 예민한 인간의 감성과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표면적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이름 없는 도공들의 생생한 숨결과 만나는 감동이었다.(2014.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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