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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3 (23:26:44)
이 가을, 함허정에 담긴 정신을 생각하며 올해 들어 크고 작은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자주 생각하게 된 말이 ‘함허(涵虛)’이다, 이 말에는 극히 함축적인 뜻이 담겨 있다. ‘젖다’, ’잠기다‘, ‘넣다’는 의미의 ‘함(涵)’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그 어떤 크기나 공간으로 규정할 수 없는 비움을 뜻하는 ‘허(虛)’가 그러하다. 노자나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식으로 말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기호화할 수 없으나 기호화된 역설적 언어인 셈이다. ‘함허’라는 말은 ‘함허정(涵虛亭)’이란 옛 정자에 들어 있는 말이다. 현재 함허정이란 이름을 가진 정자는 전남 곡성과 경남 함양에 남아 있으며, 이외에 지금은 없지만 경남 김해에도 함허정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그 어느 곳도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사진으로 보았지만 특히 전남 곡성 섬진강변에 위치한 함허정은 건물 안팎이 조응하는 중층적 구성으로 그 이름에 담긴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공간과 장소에 누정, 즉 누각과 정자를 많이 지었다. 이 중 많은 누정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지역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장소에 옛 선비들의 풍류의 흔적으로 유서 깊은 정자와 누각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누정에 올라 자연의 이치를 깊이 느끼거나, 대자연의 변화를 온 몸으로 체감하며 시를 읊조리던 전통은 사라졌다. 그 대신 낡고 퇴락한, 아니면 조악한 안목으로 복원된 건물만이 현대적 건축물이나 시설물에 둘러싸인 채 과거의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정자나 누각의 이름은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경남 지리산 자락의 농월정(弄月亭), 충북 영동의 월류정(月流亭),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처럼 자연과 함께 하겠다거나, 경북 영양 서석지의 ‘경정(敬亭)’처럼 수양의 의미가 담긴 이름이 많다. 전자가 노장(老莊)의 공간이라면, 후자는 공맹(孔孟)과 성리(性理)의 공간이다. ‘함허’는 「함허정기(涵虛亭記) 」를 쓴 소식(蘇軾, 1037년~1101년, 흔히 소동파蘇東坡로 불림)의 글에 나온다. ‘비록 작고 초라한 정자이지만, 그 위에 오르면 비어있는 벽을 통해 온 우주가 담겨진다.’는 말이다. 이 말은 거슬러 올라가면 노장(老莊)사상에 그 연원이 닿는다. 허(虛), 즉 비움이야말로 노장 사상의 핵심 언어이다. 노자 사상은 ‘유무상생’으로 집약되는데, ‘무’는 곧 ‘허’를 말한다. 동양에서는 그 어떤 정신도 물리적, 자연적 대상의 경험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신은 어떤 사물을 대상화해서 분석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조선시대 뜻 있는 문인화가들만 하더라도 몇 몇 사물의 겉모습(形似, 형사))이 아닌 사물의 전체적 관계성을 뜻하는 ‘신사(神似, 신사)’를 그리고자 했다. 전체를 내려다보며 조망하려는 심원(深遠), 즉 부감시(俯瞰視)로 그린 화폭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원래 우리 선조들의 세계관에서는 산을 오른다는 등산의 개념이 없었다. 그들에게 산이란 ‘입산(入山)’의 장소였다. 산은 계곡이 있는 곳이며, ‘허’ 또는 ‘텅 비어 있는(沖,충)’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산과 물, 그 중에서도 잠시도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물에 대한 관조는 한자문화권에서 여러 의미 깊은 기호로 존재한다. ‘함(涵)’이란 글자가 삼수변과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가변성이 내포된 글자인 것이다. 따라서 함허는 시간이 부재하는 초월적 공간이 아니라 비움과 채움의 연속인 우리 세계를 무한히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함허의 세계 속 우리 삶은 유동적이다. 누정은 있음(有)와 없음(無)이 대립하는 경계에서 구분과 차별로써 한쪽을 선택하는 ‘지(知)’나 정의를 내리는(define) 장소가 아니라 밝음과 어둠이 함께 하는 경계에 서서 통찰하는 ‘명(明)’의 공간이며, 현묘(玄妙)한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은 신비롭기도 하구나(湛兮, 담혜)!와 깊기도 하구나(淵兮, 연혜)!라는 감탄의 공간이다. 소나무나 대숲이 있는 누정에 가면 나그네는 바람소리로 세상을 느낀다. 이 때 누정은 더 이상 세상에 고립된 채 한 인간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오감으로 경험하는 장소가 된다. 이 오감으로부터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우리의 느낌과 생각은 우주로까지 확장된다. 내가 발견하고 느낀다면 이 가을 발길 닿는 모든 장소는 ‘함허’이며, 이 세상은 우주의 한 그물망인 것이다.(2014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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