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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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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과 현실적 삶

 

‘타자는 지옥이다.’ 올 봄 어느 날 무심코 펼친 책에서 본 구절인데, 때마침 타자에 대해 생각하던 중이어서 그 우연의 일치에 놀란 적이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간 10년 넘게 거의 매달 한 두 편의 글을 쓰던 일을 중지했다. 대외적인 발표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그 때 그때의 생각을 기록하거나 개인적 공부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매너리즘에 늘 신경이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 몇 달 간을 정신이 없을 정도로 쉴 틈 없이 어떤 일들에 매달리다 보니 벌써 몇 달이 지났다는 느낌이다. 그 일에는 중학교 미술교과서를 집필하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들과 함께, 산행이나 오역 논쟁으로 화제가 된 이방인 읽기도 포함된다.

 

방금 직접 갈아서 필터로 내린 맑고 그윽한 커피의 빛깔과 향기와 맛을 음미하듯,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오역 논쟁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문과 한글 번역을 같이 읽었는데, 삶의 우연성,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통찰은 다시 읽어도 언어를 뛰어 넘는 듯한 진실성을 느끼게 했다. 전통적 진술 방식은 물론 감정이나 일체의 추상적인 신념을 배제한, 찬란히 부서지는 지중해의 햇살과 물결이 몸에 닿는 듯 촉각적인 현재만을 서술한 한 문장 한 문장이 다시 또렷하게 뇌리에 와 닿았다. 무엇보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진술하는 한 개 한 개의 낱말과 문장까지 끊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는 손가방을 열고 작은 네모진 종이 한 장과 연필을 꺼내 계산을 해보고 나서 팁을 더한 정확한 값을 포켓에서 꺼내 자기 앞에 놓았다. 그때 오르되브르(*프랑스 음식)를 가져왔는데 그녀는 그것을 잽싸게 먹어치웠다. 다음 요리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또 손가방에서 파란 연필과 이번 주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 실려 있는 잡지를 꺼냈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거의 모든 방송에 표시를 했다. 잡지는 열두어 페이지나 되었으므로 그녀는 식사를 하는 동안 줄곧 세밀하게 그 일을 계속했다. 내가 식사를 끝마쳤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열심히 표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일어서서, 그 변함없이 자동인형 같은 몸짓으로 웃옷을 입

고 밖으로 나갔다.(중략) 그녀는 엄청난 속도와 정확한 걸음으로, 옆으로 비키거나 뒤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위의 글은 이방인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을 묘사한 것이다. 직접적인 체험이나 삶과 현실세계에 대한 냉철한 시각 없이는 결코 쓸 수 없는 글이다. 이러한 감동의 여운은 교실로도 이어져, 수업 중 이방인을 떠올리며 삶이나 운명이 얼마나 우연적이고 가변적인지 아이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무렵, 세 살 아래인 고종 사촌이 생을 마감했다. 이미 작년부터 몸이 좋지 않아 지난 설날에 본 이후 꽃 피는 봄날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올해 들어 설날(구정) 직전에 한 살 위의 고종사촌도 교통사고로 갑자기 생을 마감한 적이 있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슬픔 너머 삶의 유한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그날 이후 바다는 TV 화면만으로도 물살에 따라 ‘정조기’와 ‘대조기’가 달랐고, 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끼게 하는 속살을 드러내었다. 전쟁 중 일상을 간결한 문체로 기록한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바다에 대해서는 물결의 높이까지 왜 그토록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바다 물결의 상황에 따라 잠수부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속에 드나들었고, 시신들을 건져 올렸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성토의 목소리와 사건에 대한 진단의 장면은 언론매체와 TV 화면에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집 밖을 나가보면 아무 일 없는 듯 날씨는 화창했고, 막 새싹에서 벗어난 연하고 맑은 연두 빛 나뭇잎은 더 없이 청신했다. 그 나뭇잎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 갔다. 사건 후 수 십 일이 지나자 연일 참사 보도가 계속되던 TV에서는 다시 연예 및 스포츠 뉴스, 자본주의 광고가 방영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났다. 그리고 다시 아침마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려가고, 길을 걸으면서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다시 바쁜 일상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올 봄에 여러 일들을 겪으며 반복되는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가 그 어떤 신념의 틀로 규정할 수 있거나 자본의 문제가 아님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실존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생에 대한 의지와 한 순간 한 순간 형성해나가는 현실적 실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와 실천은 타자에 대한 관계의 문제로, 이는 그 어떤 규정과 판단 이전에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이 또 다른 타자에게 상처를 주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이 되풀이 되고, 심지어 ‘존재하는 것이 폭력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 것은 어떠한 사건이 단지 시스템이나 특정한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방증한다. 이 때문에 세상이란 캔버스에, 아니 한 장의 종이에 진실한 몸짓으로 채색하기가 그토록 어렵고, 바로 이 때문에 그 의지의 흔적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다.(201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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