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현
조회 수 : 196
2018.05.06 (11: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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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미학  20

, 미적자연의 상호주관성

  객체화된 자연과 심미화된 자연과의 사이의 가능적인 맺음은, 요동치는 지반위에 성립해 있다. 그것은 분기적인 입장에 의해 맡겨저 있으며, 확실히 서로 가깝게 되기는 하지만, 허나, 서로 섞여 혼재하지는 못한다. 자연상태의 미적인 판정에 대한 기술적인 판정의 相違에서, 이것이 밝혀진다. 기술적인 판정은 그 목적이 일시적 혹은 본질적으로 선명하지 않을 때도, 목적에의 수단의 적합에 대한 考量으로 존속한다. 그것이야 말로 목적이 될 수 있음에 관한 효과의 평가이다. 이 목적자체의 판정은 기술적판단이 아니고 윤리적실천적판단이며, 자유로운 자연과 연관되는 작업에는 더욱 미적인 가치평가에 의존하는 판단이며, 그럼으로써, 특별한 곤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미 예술적판단에서는, 확실하게 당연한 것으로서의 타당성요구가 있어나, 허나 구속력이 있는 여하한 판정기준도 주어지지 않는다. 경제적인 유효성이나 생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의 넘어 있음으로 해서 처음으로 통찰력을 갖춘 판정에 기초가 결해있다는 것이 자연의 경우에는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예술과 자연사이의 최후에 행했던 비교는, 이들 양자의 지각과 결합된 판단형식을 잡아낸다. 기술적인 판단은 객체적인 판단이다. 말하자면, 인과적인 전략과 더불어 불려 일으켜지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이며, 목표상태가 그것에 의해 가능한대로 간단한 방법으로 불려 일으켜지는 것은 기술적으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미적인 예술판단은, 객체적인 구성요소를 수반하는 상호주관적인 판단이다. , 그 상상적인 분절화의 힘에 의해 고도의 조응적 에너-지 혹은 고도한 관조적감성을 구비하고 있는 예술작품은 성공하고 있다. 이 판단은 상호주관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험적인 기준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규범적인 기준에 지탱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것은, 수용자라고 하는 가정적인 공동체에 단순히 불려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객체적인 구성요소를 구비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비판적인 해석에 의해 이 무리한 요구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적자연에 관해서는 현재에 있는 혹은 결하고 있는 자연미 에 관한 판단은, 그것에 대해서 객체적인 구성요소 없는 상호주관적인 판단이다. 세가지 미적인 자연관계에 속한 판단형식은, 타의 결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조응적판단만이 또한 객체적인 판단으로써 기술될 수 있었다. 허지만, 이 객체성은, 자연이 개척해 내고 자연이 대응하며 혹은 충돌하는 실존적인   投企에 의존하고 있음이 밝혀 젔다. 관조적인 판단은 순수하게 상호주관적이며, 그것은 그 미를 확정하는 점진적인 단계 이외는, 그 대상에 대해 기준이 될 수 있는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상상적인 판단은 확실히 예술형식적인 특성을 자연의 것으로 하며, 또한 자연이 그 특성을 보다 농밀하게 발전시키면 시킬수록 그만컴 보다 높은 것으로써 자연에 그 가치를 인정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는 어떤 지속하는 작품구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확실한 해석적언명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서 미적자연과 미적예술간의 보다 폭넓은 상위에 부딛치는 것인데, 그 미적예술은 작품구조에의 자연의 위치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예술의 평가를 위해서 논쟁되지만, 자연의 평가를 위해서는 단지 요란스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로 인하여 자유로운 자연의 승인을 위해서는, 미적으로 논쟁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자연미에 대한 판단은 매우 상위한 것일 수 있으며 또한 여기서의 판단의 주고 받음안에서의 일치에는 매우 어렵지만, 한가지 점에서 통일은 어렵지 않다. 원래부터 자연미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자연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유로운 자연의 개념은 허나 그 자신 하나의 규범적인 개념이다. 이성적인 기술이나 정치는 자연에 대해 이 규범을 일관되게 갖고 있을 것이다. 그 규범의 정식화는, 개개의 우위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연이 자연미의 가능성의 전제조건이라 하는 실정에서, 그것은 근거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제四장에서 다루웠던 미/숭고와 자유로운 자연과의 구별의 하나의 중요한 귀결이다. 자연의 보호나 애호의 강한 개념은 미적으로 미학에 따라 기초지워지는 것이나 그것은 일정한 내용적평가를 미적판단의 수준에서의 반드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으로 다루워젔던 자연이, 그 각각의 장합에서 자연미에 대한 개개인의 의향을 실현하고 있는가 아닌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술적으로 다루워젔던 자연은, 자유로운 자연의 보호나 육성의 미적인 위탁을 실현하는 것이 될것이며, 또한 자연에 대한 개개인의 의향을 빠르거나 늦게나마 실현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자율성의 기준이 개개의 태도결정의 상호주관성을 어떻게 조금만이라도 보증하지 않트래도 그것은 미적자연의 자유라고 하는 사태에 관한 상호주관성을 그만컴 강하게 보증할 수 있게 될터이다. 미적자연의 가능성으로써의 상호주관성은, 자유로운 자연의 미의 제형식에 대한 다른 관심속에의 자유로운 자연에의 공통의 관심에 헤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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