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현
조회 수 : 162
2018.04.22 (10: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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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학  18

  , 技術的藝術의 時間

    기술도 역시 자연의 [修正]이며, 아마도 다른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예술과는 달리, 기술은 자연적所與 그 자신의 일련의 변화에 있어 인간의 자연에 대한 관계를 바뀌 나가는, 기술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그 현상적인 다름이 아니고, 실천적인 가변성이 문제시 된다. 자연에의 기술적관계는 그럼으로 미적인 자연관계와는 대조를 이룬다. 미적인 자연관계에 있어서는 자연이 우연히 있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연을 존재시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금일 자연이 여하히 우연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자연은 그러나 자연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의 기술적개입에 의해 다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우연성은, 단지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의 기술적인 개입이 필연적으로 자연의 미적성질을 침헤하며 파괴하는가 어떤가 라고 하는 문제는, 기술의 본질이 자연지배안에 있는가 아닌가 라고 하는 문제에 귀착한다. 그 답은 Yes 이며 동시에 No 이기도 한다.

     a   自然支配 의 技術

   내가 [미적자연]에 관해서 간략하게 논한 바와 같이, [기술적자연]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논할 수 있다. 여기서 또 생각해 지는 것은, 문제제기적인 자연에의 기술적인 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술은, 광범위하게 걸쳐서 자연에 대한 제학문의 성과임으로, 그 기술의 사용에서는, 서론에서 [기준적]이리고 이름부친 자연이, [문제제기적]인 자연의 영역으로 어디까지 들어가는 모양으로 활동한다. 허나 우리들은, 생활세계적인 자연에 대해 어떤 관계가 기술적자연에 의해 발생하는가를 해명하기 위해 자연과학자신의 기준적인 자연이 이미 기술적자연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에 관해, 의론할 필요는 없다. 기술적행위의 대상이 되는 문제제기적인 자연은 그럼으로 [기술적자연] 일것이다 라고 료해될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적인 행위는, 도구적인 행위의 한 형식이다. 쫍은 의미에서 도구적인 행위는, 명확한 목적을 달성함에 제수단의 사용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도구적인 행위는, 미리 제시되어지기는 하지만, 단지 개략적, 잠정적으로 정해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제수단의 발견과 제수단의 사용이다. 이 후자의 경우, 목적실현 그 자신은, 목적결정의 한 형식이며, 예를 들면, 예술적 수단사용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인 경우, 도구적인 행위는, 선명하게 끊어 낸 목적의 획득 혹은 실현에 관계지워저 있다. 쫍은 의미에서의 도구적인 행위의 대부분은 넓은 의미에서의 도구적인 행위에서 성립한 것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도구적인 행위의 대부분은, 쫍은 의미에서의 그런 행위(도구적인 행위)를 준비하는 것이다. 기술은 쫍은 의미에서의 도구적인 행위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수단인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술이란 도구적인 행위의 도식이며, 이 경우, [도식]은 자주 일정한 행위의 경과안에서만 성립할뿐 아니고 기구나 장치일식에서도 성립하는 것이다. 이 기술적인 도식은, 인과적인 작용의 목표를 정한 달성을 지시한다. 기술적인 행위란, 인과적인 전략의 조력과 더불어 그기에 있는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다. 기술적인 知란, [인과적인 전력과 맺으저 있는 수단知]이며, 금일적인 기술을 [학문적으로 합리화한 대상화된 과정에 관한 자유로운 처리]라는 것이다.

   인과적인 작용의 연관이 존재하는 이것은 자연의 근대적개념이 었었다. 비록 물리학이 그 개념을 버렸다고 하드래도, 기술적인 실천의 기술을 위해서는, 이 인과성이란 개념은 아직도 효력이 있다. 기술적인 자연이란 자연의 합법측적인 동태에 관한 지식이나 계산으로부터 인과적인 전력에 의해 처리되며, 또한 실현가능성에 대응하여 지배된 자연이다. 이와 같은 관계속에서 일상적. 감각적인 주위의 자연공간은, 제객체영역을 인간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처리하는 공간, 규정된 법칙에 따르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事象은 또한 거리화의 사상으로도 기술될 수 있다. , 인간이 이와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을 둘려 쌓고 있는 자연은, 인간이 이를 조작하는 소여적인 자연이 된다. 자연의 이 중성화된 대상영역은, 생활세계적으로 열려 있는 자연의 내부에 있어 전개되는 것과 같이, 전체로서는 자연의 대신이 될 수도 있다. 농경의 경우, 첫쩨번 것이며, 댐건설의 경우는 두번쩨의 것이며, 연구를 위해서 실험실내의 경우는, 이러한 사례의 세번쩨의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일상적으로 문제제기적인 현존재로부터의 자연의 거리이다. 이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다른 것이며, 사용되는 기술은 그 자연대상을, 문제제기적인 행위의 세계로부터 그렇게 다른 거리이며 그때마다 멀어지는 것이나, 그것들에는 아직도 공통적인 점도 있다. , 일정한 인간적인 특전을 채우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달성되며, 자연으로부터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일정한 목적이나 기능에 봉사하는 경우에서의 자연의 조정이 문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에 적용되는 모든 기술은, 자연지배의 기술이다.

    허나 이건 자연지배의 어느쪽인가 하면, 약한 개념이다. 도구적인 지배 착취, 이용, 기능화 , 자연의 기술적인 다룸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 있는 곳에서 우리들은 처음으로  -  쫍은 의미에서의 자연지배의 강한 개념을 획득한다. -넓은 의미에서 풀이 된 기술은 자연지배일것이다라는 것의 단순한 확인만으로는, 모든 기술은 자연지배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 불가역적으로 객체화된 자연을 낳는 다는 것이 기술이란 것의 의미나 본질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 아직 논급하지 않았다. 그 반대가 옳바른것이다. 기술의 본질안에 객체화라고 하는 것이 여하히 있던, 자기목적으로서의 이 객체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기술의 본질에는 없다. 기술적행위가 이루어야 할 일이, 타의 地에 있어 객체화인가 아닌가 라고 하는 것은, 사용된 기술만의 물음이 이루어야 할 것을, 타의 지에 있어 객체화인가 어떤가 라고 하는 것은, 사용된기술만의 물음이 아니고, 인간의 목표설정의 물음이다. 개념적으로 볼 때, 미적자연을 성립시키는 것이, 기술적인 행위의 의미일런지도 모른다. 다른 표현을 빌린다면, 기술적인 자연은, 미적자연의 절대적인 반대물이 아니고, 매우 빈번히 실제로 미적자연일 수 있다. 요히훔.릿다나 타의 사람들이 되푸리 주장했다 싶이, 자연의 객체화을 위한 거리나 자연의 심미화를 위한 거리는, 역사적으로는 근간이 같다는 것이 옳바르다면, 자연의 객체화는 적으도 자연의 심미화를 위하여 부분적으로는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여하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허나 같은 설득력을 갖고, 그 자연의 심미화의 단계라고 하는 것은, 멈출줄 모르는 자연의 객체화의 역사안에서의 아주 짧은 한 단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될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자연의 힘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안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객체화적인 방향설정과 심미화적 방향설정의 공존의 가능성이 문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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