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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11: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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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연미학 5

       C  觀照

   자연과 관계하는 조응경험에서 관조적인 태도로 이행하는 것이, 양식적인 통일이 깃들어 있는 인공물에 대한 호감에서 관조적태도로 이행하는 것 보담 훨씬 쉽다는 것은, 자연과 관계하는 조응경험의 특성이다. 나의 타이프라이트. 나의 만년필. 나의 티-. 나의 실내관상용 야자와 나는, 매일과 같이 조응적 컨택트를 취하고 있다. 이들중에서 관상용 야자는 특별한 역할을 보여준다. 내가 그 야자를 바라보느려면, 야자는 그 어느때와 같은 표정으로 [응답]할 뿐 아니라, 동시에 이 응답을 철회하고 그 친밀한 몸짓을 억제하여 그 성장의 이 단계의 생존을, 잎의 흘들림과 더불어 관찰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타이프라이트나 만년필이나 접시는, 같은 한 순간의 지각으로 직관되지만, 素直한 관엽식물의 조응적마력은 그에 헤당되지 않는다. 나의 직관이 이들의 순수한 현존에 고착되어 있을 때 야자의 경우는, 하나의 우연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들이 일용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관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단순히 고찰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용하기 위해 그기에 있는 것이다. 이 사용을 위해 제작자는 타이프라이트나 만년필이나 접시를 고안한 것이나, 그것은, 단순히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닌것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그 사용자들로부터 마음속으로부터 사랑받을 것이다. 기구는 그것을 사용하는 것의 기쁨을 위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나의 일용품이 갖고 있는 이 조응적감각에서, 관조적직관은 우선 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고로, 순수한 관찰에는 깊은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다. 식물과 그 표정의 연결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과 표정 풍부한 그 형태와의 묶음과는 같지 않다.

  관조적실천은 미적의미도 또한 미적으로 추상하는 것이다. 의미에서 감각을 관조적으로 정화한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 및 감각에 의한 了解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감각의 비판도 아니다. 그것은 감각에 대한 방향짓기의 혹종의 단념인데, 그 단념이 경우에 따라서는 그 결과로 의미의 변용을 일어키는 일이 있어도 본래 여하한 종류의 의미의 변용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관조적주의는 그 단념에 의해 감각 및 감각에 대한 신뢰를 일어키는 것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출을 연출해 내기 위해 감각과 존재를 있는 그대로 둔다. 그것은 실천으로부터는 여하한 거리를 취하기 위한 실천이다.

   1장의 기술은, 그것만으로는, 무엇을 첨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허나 관조적주의에는 산출내지 형성이라고 하는 고유의 실천은 무엇이나 헤당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에는, 해설의 필요가 있다. 단순히 타의 것 보다 많다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으로 관조에 상응하는 대상을 산출할 수 있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자연은 그런 창조적활동에 의해 능가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특별히 그것이 관조에로 잘못 유도하는 장합에, 결코 순수한 관조적객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고, 항상 또한 조응적 내지 상상적으로 매료하기 때문이다. 자율적 예술의 의무는 때로는 이러한 순수주의에서 보여저 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요셒.알바스의 회화씨리즈 [정방형의 오마-][구체]회화의 제형식,혹은 공업적으로 만들어진 쟛드의 오브제등, 최근의 조형예술의 몇 개의 작품은, 이 이상에 헤당될 수 있을것으로 생각된다. 허나, 쟛드의 경우를 보면, 배타적인 관조적 예술이라고 하는 이상은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었던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이상이 과잉하게 달성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관조적 예술작품은, 항상 그 자신이상의 것이다. 마르셀.뒤샹 이상의 것을 천재적으로 나타냈던 사람은 없었다. [레이디.메이드]의 작품은 배타적인 과조적생산의 실현화를 통해 동시에 그 부가능성에 대한 증명이다. 순수한 미적구성이어야 하는 객체는 그러함으로 해서 역으로 더욱 더 마족안 의도에서 만들어저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는 사물을 그것이 바로 현재에 있는것과 같이 받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그가 객체에 일정한 형을 대여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사물의 현출만을 규정되어 있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빈병건조기를 전시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바로 지극히 실용적인 기구가 다루어저 있기 때문에 화랑의 공간에 있는 그 미적거리는, [목적없는 목적성]에 대한 실로 효과적인 사례인것이다. 그 대상은,(병의 건조를 위해서는) 합목적적이다. 허나 여기서는, 미적인 문맥에 있어, 모든 그와 같은 목적없이는 그것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 지금이야말로 관찰을 위한 것의 이외의 어떠한 것을 위해서도 그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관찰은, 실용적 내지 예술적 혹은 미술공예품적으로 형성된 형태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이 대상의 순수한 사물존재에 그 주의를 쏟는 것이다. 허나, 순수한 예술적지향이 실현되는 그 순산에 그 자향은 다시 붕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상안의 건조기는, --- 레스트랑안의 그것과는 달리 ---  우리들을 눈앞으로 이끌어 준다. 그 결과 미적 지각은 쉬지 않고 상상적 혹은 조응적형성이 끝날 무릎에, 아재서야 어느 일정한 --- 관조적 의미에서, 가까스로 미적인 지각이 정당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함으로 해서, 연출된 건조기는,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고 단순히 건조기가 갖고 있지 않했던 상상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예술적인 조작은 일반적인 기구에 그 미적 일반성이 갖는 고귀함에 관해 이야기하게 하는것이다. 관조적인 반. 인공물은, 관조적시각의 표식이 되고, 더욱 또한 비 대리적예술의 전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순수한 관조적대상과는 달리 료해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이제1장에서 문학적 택스트에 입각하여 관찰한 관조적예술이 갖는 변증법이, 새로은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변증법은, 뒤샹의 경우에는, 물론 단순히 효력을 발휘하는 것 만 아니다. 그것은 현출에 있어 등장한다. , 우리들의 예술의 개념과 더불어, 우리들의 관조적예술이라는 개념까지 수정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모든 예술은, 관조적예술도 포함하여, 상상의 바늘 구멍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그들 작품이 관조적직관의 뛰어난 객체라고 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 아마도, 그것은, 그들 작품의 유래가 상상의 영역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관조의 결출한 객체를 낳기 위해서, 예술은 보다 쫍은 의미에서 [관조적예술], 가에이로나, 뒤샹의 경우와 같이 관조적지각의 상상적모사일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거이 대부분이, 모든 종류의 구성적상상은 순수한 미적직관의 幻惑的 객체를 낳을 수 있다. 상상적 객체로부터 관조적객체로의 전환의 가능성 역시 관조의 변증법에 속에 있다. 내가 자신의 방에 엘른스트의 숲의 그림의 오리지널을 걸어 놓고 이다면, - 그것은 분명히 오리지널이 아니면 안될것이나, 라고 하는 것은, 그림이 복제일 경우에 상실하는 첫쩨번 것은    바로 그 관조적자력이기 때문에 그것의 무엇이던지 밝혀 낸 무성한 것의 움직임에 의해 눈의 즐거움이 되는 호수의 바라봄과 더불어 그 그림을 언제까지나 바라볼 수 있는 가까움이란 점에서 그것은 부재를 위로하는 藥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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