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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10: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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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번쩨     . 도우볼(Guy Debord)

資本主義社會의 藝術과 日常性을 批判                

 

 

  1968년은 20세기의 크다란 전환점으로 기억되고 있다. 현대건축을 개관하는 몇 개의 저작은 이 해를 중요한 節目으로 자리매김한다. 일반적으로도, 이 전후에 近代가 끝나고 포스트모던의 시대로 변용되었다고 사료되고 있다. 또한 라칸의 [에크리], -코의 [언어와 사물], 데리다의 [그라마토로지에 관해서], 도울즈 .카타리의 [차이와 반복] 등 사상사의 흐름을 바꾸는 저작도 집중적으로 간행되었다. 그리고, 1968년은, 학생과 노동자가 연대하여 점거한 칼체.라단에 바리케이트를 구축했던 파리의 5월현명이 일어났던 해였다. 이 혁명의 공기를 준비했던 것이 시츄아시오니스트의 활동이고, 그 중심적 사상가가 기. 도우볼이 였다.

 

    시츄아시오니스트는 1950년대에 결성되어 슈-리얼리즘의 흐름을 이끄는 그룹이다. 그들은 개인의 무의식보담 도시의 무의식에 착목하여 상황분석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 상황의 구축을 노렸다. 그래서 5월혁명에서는 코믹형식의 전단을 뿌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당시, 도우볼의 저작은 노도와 같이 읽히고 있었고. 그는 앙리. 루훼블이 주창한 일상성에서의 생활의 변혁의 영향을 받았섰는데, 그러나, 그 낡아 빠진 예술관이나 투쟁에 참가하지 않는 이론가적 입장에는 비판적이었다.

 

    도우볼은 1931년 태어 났고, 磯崎新과 같은 나이다. 허나 그의 1968년의 체험이 시츄아시오니스트에 닿지 않했던 것과 같이, 그렇게 많이 일본에 소개되지 않았다. 小倉利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쩨, 마르크스주의의 지식인이 아니고 아-티스트로 활동했음으로 정치적인 문맥에서 벗어나 있었다. 둘쩨 안드레 브르톤의 명성에 다른 슈리얼리즘의 전개에 가려젔다는 것, 3에는, [예술]의 틀을 넘어, 도시의 일상생활의 변혁을 지향했기 때문에, 예술의 측에서는 일탈로 간주되어, 정치운동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나 공장의 문제가 결략되어 있다고 간주되었다. 허나 1990년대에는 著作이나 전람회를 통해 세계적으로 재평가의 파도가 일어 난다. 일본에서는 木下誠이나 上野俊재가 정력적으로 소개한다.

 

    도우볼의 주저 [스팩타클의 사회](1967)는 세상 모든 것이 눈요기에 지나지 않게 된 현대도시의 일상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근대의 자본주의사회는, 일방향의 컴뮤니케이선에 의해,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비인간적 존재로 만듦으로써 이를 지배하고, 직접적으로 살아 있는 경험을 表象과 代理의 세계로 밀어 내 버린다. 그리고 미디어의 과잉화는, 스팩트클의 사회를 전체적으로 갑싸버린다. 스택트클이란 노동이나 생산을 추상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스팩트클에서, 세계의 일부가 이 세계의 목전에서 연출되고 {대리. 표상되어}, 그기다 이 세상보담 더 낳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고로, 시츄아시오니스트는, 그 顚覆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본서는 221의 단편적인 택스트로 구성되고, 서책의 형식도 정해진 목표에의 수집이라는 스팩트클화에 항거한다. 그리고 無斷轉用을 장려하고, 저작권을 거부한다. 언어는 노상에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픈 소-스적 발상이다.

 

    시츄아시오니스트의 主戰略은 [漂流][轉用]이다. 우연에 맡기면서 도시에서 꿈틀거리며, 일상적인 의식을 절단하는, [실천적인 행동양식]이다.

 

    예를 들면, 한밤중에 해체현장에 침입한다던지, 끊임없이 힛치 하이크를 한다던지. 도우볼의 [표류의 이론](1958)에 의하면, 많은 소 그뤂에 의해, 심리지리학적인 기폭이나 도시넷워-킹의 끊킨 틈새를 인식하고, 데이타의 集積과는 다른 地圖의 작성이 가능해 지게 한다. 그들은 자동차가 보행자를 갈라 놓는 도시계힉을 부정했다. 心理地理學的地圖는 도시의 물질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을 해방시키는. 地圖인것이다

     한편, [전용], 본래의 장소에서 사물을 탈백시켜, 새로운 창조의 가치를 겨냥하게 한다. 그들의 정의에 의하면, [전용]이란, 앞서 존재하는 예술적 제요소를 새로운 단위속에서 재사용하는 것]이다. 허나, 이것은, 희롱하는 바로디는 아니다. 미를 구축하는 것도 아니다. 게릴러적인 것이다. 도우볼은 [전용의 사용법]에서 [전용]이 문학이나 영화에서 건축이나 도시의 레벨로 확대하여, [상황의 구축]으로 이르게 한다, 라고 쓰고 있다. 그기서 심리지리학적으로 도시를 조사하여, 도시의 스펙트클장치나 교통의 [전용]을 생각한다.

 

    시츄아시오니스트는, 르 콜비지에의 도시 계획이 기능주의로 생활을 산산쪼각 내 버리고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것을 비판하여, 생활의 전체성을 회복하게 하는 도시의 상황을 바꾸는 제안을 행한다. 일례를 들면, 공원의 야간해방, 교회를 귀신집으로 전용하고, 미술관을 페지하여 가두나 술집에서 전시한다, 감옥에 외부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하게 하며, 땅 이름의 젼용이나 가로명의 변경, 모뉴-멘트의 파괴등이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이 스팩트클화 하지 않토록 유의한다. 그리고, 5월혁명의 바리케이트나 스쿠오딩등, 공간의 자본화에 대항하게 하는 가지 각색의 운동을 장려한다.

 

    건축에의 보조선을 끄 놓는다. 특히 베르날.-미는 시츄아시오니스트와 5월혁명의 영향을 받아, 공간의 이용의 문제를 고려하여, 건축에 이벤트를 발생시키는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교회를 보-링장으로 한다던지, 의도하지 않는 용도에 시설을 전환하는 그로스 프로그램잉은 [전용]과 닮았다. 그의 프로그램론이 슈리얼리즘적인 것도 납득이 간다. 90년대 이후의 젊은 건축가들이나 아-티스트들은, 도시에 이미 있는 것들 을 유용하여 시츄아시오니스트적인 태도를 보인다. 허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젊은이들이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것이다. 이를 타협으로 볼것인가, 유연으로 볼것인가는 판단이 갈라질것이다.

 

   시츄아싱니스트는 예술가와 공동전선을 폇는데, 허나 도우볼은 예술적인 미나 창조하는 주체의 실현도 인정하지 않는다. [새로운 미는 狀況的 美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 엄격함과 순수함으로 하여 그들은 건축적인 프로젝트를 배제하고, 최후에는 情性化한 스스로의 조직을 무너터린다. 루페뷜이나 시츄아니즈트의 이론으로 시작하면서 출발하여, 消費社會를 분석한 쟝.보드리얄도 60년대후반에 건축가와 [-토피아]라고 하는 그룹을 결성하였는데, 5월 혁명이후, 이론과 실천의 乖離로 인해 결열하였다. 사상가와 작가가 만나는 어려움을 여하히 극복하는가가 크-다란 과제가 된다.

 

   약력: 1931년 파리 출생. 레토리숨의 운동에 참가하지만, 그 신비화와 비실천적인 태도에 반발하여, 52년에 좌파의 친구들과 [레토리스트 인터내선날]을 결성.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과 일상성을 비판하였다. 57년에는 [시츄아니스트. 인터내선날]을 결성하여, 72년의 해산까지 중심적 지도자가 됨. 이들 기관지에 많은 메니페스트를 발표하였다. 집필활동 이외도 [轉用]을 사용하는 [-드를 위한 절규](1952)등 스팩트컬을 배재한 영화도 제작하였다.

 

  주저: [스팩트컬의 사회] 1993.   [인터내선날.시츄아니스트 전 6[상황의 구축에] [미궁으로서의 세계] [무장을 위한 교육] [孤立의 技術]  [스팩털의 정치]  [하나의 時代의 始作] 1945.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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