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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3 (12: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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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번쩨        에드와드. 사이드(Edward W. Said)

 

               歷史와 文化를 대상으로 이를 부각시키는 批判의 눈         

 

    사이드는 기본적으로는 文藝批判家임으로 미술을 정면 그대로 논한 일은 그리 많지 안타. 허나 그 主著의 하나인 [오리엔탈리즘]의 표지에 자주 회화가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리엔탈리즘]라고 하는 말 그것 자체가 서양미술에 있어 동양취미라는 의미로 쓰인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적어도 혹종의 사람들에게 이 말은 과거의 일부의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취미를 기술하는 것이라기 보담, 사이드가 부여했던 의미 지금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무관계가 아닌 광범위한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제문제의 상관성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도

그 권외가 아니다.

  저서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트를 제재로 하는 서양인에 의한 문학작품이나 地域硏究가 여하히 오리엔트를 표상해 왔는가에 따라서 비판적으로 논하고 있다. 허나 이 저작의 주제는 오리엔트에 대한 서양인의 단순한 무지나 편견은 아니다. 근대라는 것이야 말로 그 주제인것이다. 이교도에 대한 그리스드교도의 종교적 편견이라면, 근대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세속화가 나아간 근대가 되면서, 과학적. 합리적인 기초에 입각하여 제문화를 비교한다는 일견 냉정한 자세가 지배적으로 되어 갔다.

 그러한 과학화를 선도하는 학문의 하나가 근대文獻學이었다. 이 학문이 성취한 중요한 작업은 [언어란 것은 신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유출하는 힘에 의해 생긴 것이다] 라고 하는 그때까지의 언어관을 부정한 것이였다. 이 부정에 의해 인간의 언어는 신이라고 하는 외적인 힘으로부터 독립한 하나의 [내적인 場]으로 파악하게 이른다. 근대문헌학은 내적인 수비일관성을 갖는 언어라고 하는 객관적인 연구대상을 획득한 것이다. 이후 점잔케 분석됨을 기다리는 이 연구대상을 여하히 맛있게 요리를 하여 그 안의 비밀을 고백시키는가 가 문제가 된다. 그건 말하자면, 겉치레로 다체로운 언어현상의 배후에 그 자체로 독립된 불변의 [시원] origin을 찾아 나선 旅路가 된다.

      오라엔트에 대해 열렬한 관심을 품는 문학자나 연구자도 역시 근대문헌학자와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연구대상인 오리엔트와 대면하였다. 기대한 데로 오리엔트는 매혹적일 정도로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허나 오리엔탈리스트는 그기서부터 이스람문화의 내재적 본질 하나의 닫혀있는 시스템 을 파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야 말로, 서양의 오리엔탈리스트가 특권적으로 지니고 있을법한 [()]의 능력이며 의무일것이다. 허나, 그렇게 해서 축출해 낸 오리엔트의 본질은, 구체적인 시간. 공간의 어디에도 위치되어 있지 않다. 초시간적. 초공간적인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이드는 비판한다. 그럼으로 해서 그려저 낸 오리엔트는 靜鎰하며, 논리적인 명석함까지 띠고 있는 것이다. 이때 무엇인가 배제. 엄페되어 있다고 보게 된다. 그 자신의 문예비판용어를 빌린다면, ‘중심없는 複數性의 能産的인 戰場[시작 (beginning)]이 된다. 이를 나타내려고 하는 사이드의 작업은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정치적이라 말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바, [오리엔탈리즘]안에서 회화를 둘려싼 문제는 그렇게 많이 다루어저 있지 않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사이드의 의론은, 서양에 의해 식민지상주의가 전개된 19세기 후반, 2제정기의 프랑스에서 활약한 아카데미즘의 화가 제롬이 오리엔트를 여행한 후에 그린 오리엔탈이즘 회화에도 헤당 된다고 본다. 실제로 이 저작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 역시 제롬이다. 제롬이 정밀함을 극한 필적에 의해 만들어 내는 이스람세계는 영원한 靜的 세계안에서 結晶化된 것 같이 보인다. 그의 정밀한 회화수법이 기법적. 문화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진등 서양의 과학기술에 의한 시각장치의 명석함이며 그것은 근대문헌학의 (객관성)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석함을 만들어 낸 과학기술 또한 오리엔트를 식민지로 지배하는 힘 역시 서양에 주었던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자체는 단순화. 순수화를 가저오는 장치이며, 科學化的이라던가 보편적이라고 하는 형용어가 알맞은 유일 무이한 형 --- 이따금 자주 [본질]이라고 부르게 되는형 --- 으로 향하여 수렴해 간다. 여기에 대하여, 오리엔틸리즘(비판)쪽은 그것이 重層的이며 동태적인 이스람세계의 구체적인 시간. 공간이 있는 모습과 같이 섬세한 눈매를 보이고 있는 이상, 다양하며 복잡한 의론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기서는 모-든 요소가 비판의 土俵속으로 끌려 들어 간다. 예술작품이나 학술논문의 작자는 작자로써의 특권을 박탈당하고 작품의 독자나 감상자도 無傷으로 있을 수 없게 된다. 물론, 비판을 전개하는 논자 본인도 마찬가지다. -든 국면이 모-든 전술을 구사하는 끝이 없는 戰場으로 화한다. 라이브랄리로 700페이지가 넘는 [오리엔탈리즘]의 장대함은 이미 여기서 유래했다고 봐야한다.

 

    따라서 사이드적인 발상을 미술에 응용하려는 시도도 단순히 하나의 종류가 아닌 각지각색의 방법이 있을 수 있는것이다. 그 중의 하나를 실천해 보인 것이, L. 녹크린이다. 사이드가 20세기의 바래스치나人이며 더욱 영문학연구자라고 하는 스스로의 개별성을 이론적입각점으로 잡았던 것과 같이 녹크린도 여성이면서 동시에 미술사가라고 하는 긴장관계를 품고 있는 개별성에 입각하면서, 서양에 의해 수동적인 대상으로써의 오리엔트를 남성적 시선앞에 노정시키는 여성이란 것과 겹침으로써 사이드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려고 하고 있다고 본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 하나의 이어받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N. 브라이손이 말하고 있는것과 같이, 사이드는 [필요불가결한 분석도구의 제공]을 제공해 주었을 뿐으로, 그것을 어떻게 쓰는 가의 문제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약력: 1935년 영국의 위임통치하의 예르살램에서 태어남. 그리스드교의 파래스치나 가정에서 자람. 예르살램. 레바논. 카이로를 왕복하면서 소년기를 보냄. 51, 미국으로 건너가서, 프린스톤대, -버드대에서 배움. 컬럼비아대의 영문학. 비교문학의 교수. 전문의 문학 연구뿐 아니라, 오리엔탈리즘 비판에 대표되는 바 서양적 知 전체를 비판, 나아가서 파래스치나 문제의 비판적. 실천적 간여를 행하고, 분야를 초월하는 큰 영향을 지속하고 있음.

    주저: [시작의 형성 의도와 방법] 1992 일본.    [오리엔탈리즘 상. ] 1993 일본.   [세계. 택스트. 비판가] 1995 일본.    [파래스치나는 무엇인가] 1995 일본.    [음악의 코라브레이선] 1995 일본.    [이스람보도 --- 뉴스는 여하히 만들어 지는가] 1996 일본.     [지식인란 무엇인가] 1998  일본.    [펜과 검] 1998  일본.    [문화와 제국주의] 1998 일본.        [파레스치나로 돌아 간다] 1999 일본.    [먼 장소의 기억: 자전] 2001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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