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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17: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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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번쩨            -. 맥루헌(Marshall Mcluhan)

 

 미디어는 멧시지다

  -.맥루헌은 원래 영문학자였으나, 1962년에 [구덴베르크의 銀河系-活字人間의 形性], 64[미디어론-인간의 확장의 諸相]을 출판하여, 일약 미디어론자로써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캐나다의 사상가이다.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었다. 그리스도교나 심리학을 위시한 폭넓은 교양을 배경으로, 가지 각색의 知의 영역을 橫斷하면서 미디아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구덴베르크의 은하계]로 활자미디어가 얼마나 이 세계를 변화 시켰는가를 논한위에 [미디어론]에서 전자미디어를 논할 틀(파라다임)을 제시했다.  

 

   80년대에 와서는, 과거의 시대의 籠兒라고 하는 대접을 받는 경향이 강했었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었다. 근년의 재평가는, 인터넷의 보급을 위시하여 멀티.미디어를 위시하여 멀티.미디어를 둘려싼 정세에, 그로벌.뷜레지(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그의 미디어론이, 적중했던 탓이다. 그가 오랫동안 근무했던 트론트대학의 맥루한.프로그램의, 미디어에 관한 연구의 지속도 그러한 평가에 공헌하였다.

 

    그가 말하는 미디어란,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던 매스 미디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후 일거에 보급되기 시작하여 큰 영향력을 보였던 태레비젼의 미디어성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보다 광의의 미디어란 개념을 설정한다. 그것은 기술이라고 바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론]안에서 다루고 있는 예를 들어 본다면, 말해지는 언어, 쓰여진 언어를 위시하여 수, 의복, 사진, 신문, 라디오등을 하나의 미디어의 카테고리속에서 다루는 것이었다. (정신영역에 물 개념을 도입한 것)

 

   [미디어론]의 문제에 기술되 있는데로, 맥루헌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라고 잡는다. 그에게 미디어란 인간의 감각의 활동을 신체밖으로 들어낸 것으로 이로 인해 인간의 감각비율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들면, 라디오라고 하는 미디어는 듣는다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한다. 라디오가 없으면, 디스크 죡끼의 소리는 듣는 자가 있는 장소에서 너무 멀어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유명한 명제의 하나로, [미디어는 맷시지다]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 의미는 미디어를 통해 보는 내용 이상으로, 미디어를 사용하는 자체로 인해 우리들의 지각은 변화를 일으킨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TV가 전하는 뉴-스이상으로, TV를 보는 것 자체로 우리들의 사유는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에 의해 감각비율이 변화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쓰는 문자, 활자인쇄술, 그리고 전자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함으로 문화는 크게 변천을 걲으 왔다. 더욱이 근대의 활자인쇄술이 지배적인 문화와, 그 이후의 전자미디어가 지배적인 문화는 모-든 면에서 대비되고 있다.

 

    쓰는 문자, 활자미디어의 등장으로, 우리들의 지각은 시각중심이 되었다. 말해지는 언어가 쓰이는 문자가 되고 활자가 됨으르써 사고나 감각은 시각화되고, 신체에서 떨어저 나와 객관화시킬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사물은 균질화되어 시계열로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설명될 수 있게 되었다. 미술에서는, 르넷상스에 원근법이 채용되는 것이다. 서책에서던 회화에서던 작자의 단일적인 시점에서 재구성되어 나온 세계다.

 

    회화의 세계에서 이 원근법이 결정적으로 번복된 것은, 20세기초두의 큐비즘의 탄생이였으며, 동시기에 영화가 탄생한다. 큐비즘에서는, 단일의 시점에서 보이는 2차원의 세계를 가능한데로 균질하게 변환하는 것을 멈추고 순간적으로 느낀 대상 전체를 같은 2차원의 평면으로 그린다. 원근법이라면 함께 있을 수 없는 배면과 전면이 나란히 광택이나 질감이 조화되지 않은 채로 그려진다. 여기서는 큐비즘란 미디어가 멧시지가 된다. 그려저 있는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려저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활자미디어에서 전자미디어가 주류가 되는 이행기에 큐비즘이 탄생해 나왔드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수반된 감각의 변화를 제빠르게 잡아 내는 것은 예술가들이다. 큐비즘의 경우에는 시각우위의 활자미디어의 시대로부터 촉각의 복권의 징조가 보인다.

 

    2차세계대전후에 보급되기 시작한 TV는 시청각을 물론이거니와 全感覺을 전체적으로 가동시키는 것이라고, 맥루헌은 생각했다. 테래비전의 영상은 영화정도로 화상의 정도는 높지 않으며 모쟈이크상이다. 탤래비전 영상과 같이 주어지는 정보량이 적고 세부까지 발신자가 정해지지 않는 미디어를 맥루헌은 쿨(cool)한 미디어로 부른다. 쿨한 미디어는 듣는 측의 참가를 요청한다. TV의 경우, 영상도 그 영상을 3차원으로 보기 위해 시청자의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보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디렉트가 세세하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것에 관해서는 시청자의 상상력을 전제하고 제작한 것이다. 그래서 완성품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와성하는 전의 제작과정을 보이도록 짜 놓는 것이다.

 

   활자미디어시대의 예술이 만든자와 받는자는, 단일의 시점에서 만든자의 표현하고저 하는 완성품을, 받는 자가 만든자의 의도에 따라 본다는 관계였었다. 만든자가 받는자보담 압도적으로 작품에 대해 우위에 놓여 있었다. 한편, 전자미디어시대의 예술은 전자 미디어에 따르지 않트래도 만든자의 단일 시점을 찾아 볼 수 없는 모쟈이크적인 작품의 경우가 많다. 또한 작품자체도 만든자의 의도로 완결하는 것도 아니다. 수용자가 작품에 간여함으로써 처음으로 작품으로써 완성됨으로 만든자와 수용자의 구별이 애매해 지는 것이 아닌가.

 

    탤래비전등에 대한 맥루헌의 견해가, 그의 사후에 등장한 가지 각색의 미디어의 고찰에 응용되고 있다. 따라서 전자미디어를 사용하는 현대미술의 고찰에 그의 사상이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려운 현상이다. 더욱이 전자미디어를 쓰지 않는 현대미술에서도 작자와 수용자(감상자)와의 관계의 변화를 하나의 계기로, 작품과 대면함에 있어 우리들이 어떤 感覺受容을 요구받고 있는가를 탐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약력: 1911년 캐나다 알바타주 에드문턴 태생. 34년 마니토바 대학 修士號 취득. 36년 영국 캠브릿지 대학 학사호 취득. 36-44년 미합중국 위시콘신 대학, 세인트 루이스 대학등에서 교편을 잡다. 37년 카드릭로 개종. 43년 캠브릿지 대학 박사호 취득. 46-79년 카나다 토론트대학에서 교편을 잡다. 52년 토론트대학 교수취임. 63년 토른트대학, 문화와 태크노로지의 신센트 소장에 지명되다. 80년 몰.

    주저: [기계의 新婦 산업사회의 호-크로어] 1968년 일본.   The Mechanical Bride: Folklore of Industrial Man, Vangard Press, New York, 1951    [긋덴베르그의 은하계 활자인간의 형성] 1986 일본.

          The Gudenberg Galaxy. The Making of Typographic Man, University of Toront Press, Toronto, 1962

          [미디어론 인간확장의 제상] 1987 일본.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 of Man, Mentor, New York 1964.   [미디어는 멧시지다] Q. 후이오래와의 공저 1968 일본.  The Meidum in the Message: An Inventory of Effects, Bantam, New York, 1967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 Q. 후이오래와의 공저. 1972 일본.     War and Peace in the Global Village, New York: Bantam 1968  E. Mcluhan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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