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현
조회 수 : 1462
2016.08.18 (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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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7

 

       1924년 이후 제1차 국공합작하에 중국국민혁명이 개시되고, 많은 혁명적인 조선청년들이 여기에 참가하게 되는데, 장지락도 1925년 초겨울에 그 근거지였던 광주에 도착하여, 황포군관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중산대학에서 경제학, 사회발전사등을 연구하였다. 중국측 문현에 의하면, 장지락은 이 25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단히 빠른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북벌전쟁에는 종군하지 않고 광주의 근거지에 머물려 있었는데, 27년 북벌도상의 상해에서 장개석이 일으킨 반공 구테타에 반대한 광주봉기(광주 코뮨-), 해륙풍 쏘비에트에의 철수와 그 붕괴후의 백색 태로하의 탈출 모습은 본문에서도 생생하다.

 

         1928 9, 홍콩을 거처 상해에 가까스로 생환한 장지락은 얼마 있지 않아 당의 지시에 의해 중국공산당북경시위원회조직부장의 의무에 맡겨지며, 29년 봄 북경에 도착한다. 바야흐르 코민테른6회대회에서 [일국일당원칙]이 확인되었으며, 현재국민당가입방침이 강하게 실시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장지락은 북경도착후 얼마되지 않는 298월에 동북의 길림성에서 열렸던 회의에 참가하였던 바 이 역시 朝鮮共産黨滿洲省委의 解消, 중국당에의 가입방침에 관한 회의로써, 그는 여기서 중국당의 입장을 대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고 봐 진다.

 

     반동의 본거지인 북경영사관에 인도되어 조선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공산주의자임을 끝까지 부인하여, 314월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 동년6월에 북경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당은 오히려 생각보담 빨리 돌아 온 것을 의문시하여 당적회복조치를 취하지 안했다. 이러한 경과와 겹치는 []과의 확집에 관해서 본문의 기술은 읽는 이로하여금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란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ML파 중심의 조선공산당 제3차집행부가 깊이 간여하였다는 사실로 안광천이나 韓偉健임을 추측되었으나 그 후의 경력등을 조회하여 한위건이 아니였나 사료된다. 여하간 李立三派라는 렛델을 받는 등 불우의 장지락은 32년초 친구의 배려에 의해 화북성 保定의 제2 사범학교 교원으로서 취임하였는데, 관현에 쫓겨 고양의 초등학교로 옮겼다. 가는 곳 마다 학생이나 청년을 조직하는 대중활동에 성과를 냈지만 고양에 있을 때 당시의 왕명지도부의 무장봉기지시에 반대하여, 북경시당에 통일전선론적 관점에 입각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시기에는 전반적으로 탄압하에 조직의 지도계통이 혼란을 기하고, 상세한 점은 알 수 없으나, 19334얼 북경에서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때 장지락은 다시 중국경찰에 체포되 전향을 거부하였음으로 일본영사관에 인도 되 버린다. 이때도 조선에 송환되었으나 이내 석방되 34 1월에는 북경으로 돌아 왔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때 함께 체포된 젊은 중국인 여성동지 趙何平과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어 북경 서직문 부근에 집을 빌려 짧은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하게 된다. 지인의 연고로 34년 겨울(중국측의 문현 [조선족혁명열사전] 3, 1페이지에 의하면 35 9월로 되 있으며 이하 36년경 까지 년대가 모두 본문과 어긋나 있는데) 처와 함께 석가장으로 옮겨 철도노동자등을 통해 이 지역의 당조직의 재건에 성공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355월에 당화북위원회와 직결시켰다고 되 있는데, 우의 [조선족혁명열사전]에는 361월 중국공산당 석가장 공작위원회 성립, 얼마 있다가, 중공석가장시위로 됬다고 적혀 있다. 여하간 조직은 공인되었으나 여기에 진력한 장지락 자신의 당적은 여전히 애매하였다고. [만주]를 확보한 일본군은 화북으로 침략의 손길을 뻐쳐 [익동자치위원회]라고 하는 괴뢰정권을 발족시키는(193511) , 특히 북경주변의 상황은 긴박해 있을 때였으며, 12.9학생운동도 이것에 저항하는 의미를 띠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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