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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2 (17: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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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악산과 인왕산, 경교명승첩을 그린 가양동 탐방 소감

 

 

지난주 이틀 동안 겸재 정선이 태어나서 살던 북악산 및 인왕산 일대와 경교명승첩을 그린 가양동 궁산을 탐방하였다. 두 곳 중 한 곳은 당일에 즉흥적으로, 다른 한 곳은 고향 출신 사람들과의 정기 모임 차 가게 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미루어둔 숙제를 한 순간에 해결한 기분이 들 정도로 감회가 깊었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2학기 중 1차 지필고사 기간 중이었던 지난 목요일 오후에는 인왕산 근처에서 유년 시절과 중고등학교를 다닌 후배 작가의 안내로 겸재가 태어나고 자란 북악산 자락과 중년 이후 겸재가 거주하고 많이 그린 인왕산 일대를 탐방했다. 현 경복고등학교 교정과 인왕산 자락에서부터 겸재가 인왕산의 주봉을 올려다보는 고원법으로 그린 장소, 또한 겸재가 그림을 남긴 인왕산 주봉 아래 계곡인 수성동 기린교 일대, 북악산과 멀리 남산을 바라보며 당시 서울의 전경을 그린 주요 장소를 실제로 확인하였다. 특히 겸재가 고원법의 시점에서 압도적 필치로 대담하게 그린 치마바위를 본 시점에서 인왕산을 올려다보면서 겸재가 그 주변의 특징적 바위들까지 포착해서 그렸다는 사실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탐방 시작 직전부터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과 함께 쾌청한 날씨여서 그날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맑고 굳센 기운을 더 온전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990년대 초반에 간송미술관에 다녀온 이후, 특히 1990년대 후반에 겸재 정선이 지금의 경북 포항시 청하현감 재임 시 그림을 그린 곳인 내연산 계곡을 답사하고 그곳 바위 절벽에 새겨진 정선의 이름까지 직접 탁본하면서 나름대로 그의 그림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외에도 평해 월송정, 울진 망양정, 영양 입암, 안동 도산서원, 삼척 죽서루 등 정선이 그린 곳이라면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2002년에는 북한에 위치한 금강산 일대와 삼일포 등까지 정선이 그린 곳을 답사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정작 가까운 곳인 인왕산 근처에는 1990년대 초반 무렵 인왕산에 한 번 다녀온 이후 정선 예술세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계곡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간 것이다.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궁산은 지난 주 토요일에 다녀왔다. 고향을 떠나 온 일가들이 1년에 4번 모이는 데, 이번 모임을 주관한 일가 형님이 궁산 자락에

있는 겸재정선미술관(원래 겸재정선기념관이었으나 최근 명칭이 바뀜)에서 모이기로 장소를 정했기 때문에 가게 된 것이다.

이 미술관은 수 년 전 겸재 정선의 ‘청하성읍도’가 소장되어 있다고 해서 간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학교 미술탐구반을 데리고 갔던 곳이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그날 약속시간에 맞추어 겸재정선미술관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데, 모임 일행들 일부가 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양천향교로 오게 되어 미술관 뒤쪽에 있는 야산인 궁산근린공원 쪽으로 가게 되면서 이곳 궁산 소악루 일대가 바로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으로 지내면서 경교명승첩을 그린 장소임을 알게 되어 탐방하게 된 것이다. 겸재정선미술관이 있는 궁산 일대는 겸재 정선이 영조 때인 1740년 65살의 나이로 현감으로 부임하여 4년 두 달간 머물며 당대 최고의 시인인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서로 주고받기로 약속하면서 한강 주변의 풍광을 화첩으로 남겼다. 이 그림들이 바로 <경교명승첩>이다.

 

향교에 오기로 약속한 일행들이 다 모여 양천향교에서 궁산근린공원 쪽으로 올라갔더니, 겸재를 기념하는 사생대회에 참가한 많은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한 정자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소악루(小岳樓)였다. 최근에 복원한 건물이었지만 한강과 한강 북쪽의 광경이 멀리 북한산까지 한 눈에 들어 왔다.(*집에 돌아와서 검색해보니 원래의 소악루는 지금의 위치보다 조금 아래인 가양동 세숫대바위 근처에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1994년 구청에서 한강변 조망을 고려해 현 위치에 신축했다고 적혀 있었다).

 

소악루는 '작은 악양루(岳陽樓)'란 뜻으로, 악양루는 중국 양쯔강 유역에 있는 동정호 주변에 좋은 전망을 가진 정자로 시성(詩聖)과 시선(詩仙)이라 일컫는 이백과 두보가 이곳에 악양루에 가서 그 풍경을 보고 시를 남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등학교 다닐 때도 배웠던 두보의 시 '등악양루(登岳陽樓)'가 유명하다.

소악루는 겸재가 살던 시기에 궁산(*조선시대는 파산, 또는 성산이라 부르기도 했다)아래 양천현청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소와(笑窩) 이유(李愉, 1675~1753)가 지은 누각이다. 그는 왕의 후손으로 그의 나이 63세(1737) 때 궁산 기슭 한강이 잘 바라보이는 땅에 소악루를 지었다. 이유보다 한 살 적은 정선은 65살인 1740년에 양천현령이 되었으므로 소악루가 짓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소악루 난간을 마주하고 서니 탁 트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각 밑으로 보이는 올림픽 대로, 강폭이 넓은 한강 건너 마주 보이는 정면으로는 안산(鞍山) 뒤로 멀리 북한산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안산은 인왕산 남쪽, 연세대학교 뒷산이다. 조선시대에 평안도 강계와 의주에서 한양으로 연결되는 제 3 봉수와 제 4 봉수 자리가 안산에 있었다고 한다. 정선은 저녁 시간에 안산의 봉수불이 피워진 모습을 그렸으니 이 그림이 바로 경교명승첩에 나오는 <안현석봉(鞍峴夕烽)>이다. 그림 왼쪽으로는 백련산이 솟았고 안산 뒤로는 인왕산과 백악(북악산)도 자리잡았다. 이 그림은 겸재가 궁산에 올라 한강 건너 안산(鞍山 : 길마재)에서 피워 올리는 저녁 봉화불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사생해낸 진경산수화이다. 이 그림과 관련하여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이 지은 시가 전한다.

 

계절 맛 참으로 좋은 때(有味老淸時,유미노청시)

발 걷으니 산 빛이 저물었구나 (捲簾山色晩,권렴산색만)

웃으며 한 점 별같은 불꽃을 보고(笑看一點星,소간일점성)

양천(陽川)밥 배불리 먹는다.(飽喫陽川飯포끽양천반)

 

안산 오른 편의 동북방향에는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 조성된 거대한 산이 길게 가로 누워 남산의 상부만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겸재가 이 지역을 그린 ‘목멱조돈’이나 ‘금성평사’와는 너무도 다른 광경이었다. ‘금성평사’는 겸재가 궁산에서 한강 상류 쪽을 보며 그린 그림으로, 금성산에서 한강 하류 쪽이 난지도이며, 이 섬에 쌓인 모래가 '금성평사'이다. 이 지역의 한강을 조선시대는 서호(西湖)라 불렀는데 모래톱이 강물의 흐름을 느리게 하여 호수 같았기 때문이다.(*지금의 마포구 성산동이란 땅이름도 금성산에서 유래함)

 

겸재 그림과 지금의 서울을 비교해보면 참으로 상전벽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정선의 그림에서 강이 흐르던 곳에 올림픽도로가 만들어져 차들이 달리고 강가에 있던 탑산과 증미산은 강에서 멀어졌다. 강물이 깊숙이 들어왔던 곳은 메워져서 아파트가 생겼다.

겸재가 그린 <목멱조돈>은 궁산에서 본 한강 건너 멀리 두 개의 봉우리로 짙게 우뚝 솟은 남산 옆으로 막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남산 아래는 만리재, 애오개, 노고산, 지금의 홍대 뒷산인 와우산 등이 나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에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소악루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 산 정상을 지나니 한강 하류 쪽이 보이고. 겸재가 ‘소악후월(小岳候月,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다)’을 그린 장소가 있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소악후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자(간송문화 제66호, 회화 41 대겸재, 2004)를 찾아보니, 이 그림을 그린 곳은 한강하류 쪽이 아니라 한강상류로 나와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관찰해본 결과, 책자의 설명이 맞았다.(*구청에서 겸재 그림을 그린 곳을 새롭게 조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오류인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양천현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양천구와 강서구를 포함하는 땅이름이었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지역의 경치 좋은 꼽아 팔경이라 이름 붙였다. 양천의 팔경은 소악루에서 느껴보는 맑은 바람(岳樓淸風,악루청풍), 양화진 앞 한강에서 불을 밝히고 고기잡는 풍경(楊江漁火,양강어화), 남산으로 아침 해가 돋는 풍경(木覓朝暾,목멱조돈), 계양산으로 해지는 풍경(桂陽落照,계양낙조), 행주로 돌아오는 고깃배를 바라보는 풍경(幸州歸帆,행주귀범),개화산에 저녁 봉화불 오르는 풍경(開花夕烽,개화석봉),저녁에 개화산에서 들려오는 종소리(寒山暮鐘,한산모종), 이수(안양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 모래밭에 갈매기가 쉬는 풍경(二水鷗眠,이수구면)을 말한다.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도 대체로 이러한 풍경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팔경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그렸다.

 

최근에 와서 겸재 정선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깊어지면서 ‘진경산수화’라는 주제의식 편중에서 벗어나 좀 더 종합적인 시각에서 겸재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추세이다. 단지 기행사경도에 근거한 진경산수화라는 주제 중심이 아니라 시의화, 방고(관념)산수화 등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산수화, 이상향을 그리다 전’을 통해 한·중·일 산수화가들을 보면서 관념적인 ‘방고산수화’와 실경을 대상으로 한 ‘진경산수화’를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모두 이상향을 그리고자 한 열망의 표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특정 공간이나 장소에 대한 체험과 그리고 이러한 그림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서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비록 짧은 순간의 경험에 지나지 않지만 이번 두 군데의 진경산수 근거지 탐방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현장 답사를 통한 체험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겸재의 그림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옛 그림들은 바로 이 땅의 풍토를 체험한 소산이었다. 그러면서도 겸재의 그림이야말로 동아시아 그림의 특징인 손, 눈, 마음(정신)이 잘 종합된 그림임을 새롭게 실감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인왕제색도로 대표되는 서울주변의 그림과 경교명승첩의 화풍은 매우 이질적일 정도로 다르다. 화강암벽이 많은 서울 주변의 산과 계곡은 주로 ‘한 번에 쓸어내듯 휘두른 빠른 붓질(일필휘쇄(一筆揮灑)로 그렸다면 넓은 강과 토산 위주의 한강주변은 청록훈염법(*훈염暈染은 해무리와 달무리 지듯 물에 먹이나 채색을 약간 섞어 우려내는 설채법임)으로 그림으로써 섬세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전자가 강한 필치와 풍부한 묵법을 구사하였다면 후자는 절제된 담백한 필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처럼 상이한 기법의 그림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장소를 기준으로 한 시각적인 사실성보다는 역시 주관적 변형성과 즉흥적인 흥취를 표현하는 개성적인 화풍으로서 기본적인 필치라든가 그림을 구성하는 능력 같은 면에서 공통점이 보인다. 상이한 스타일이면서도 이들 그림 모두가 기존의 정형산수화풍을 갱신한 새로운 화풍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겸재가 보여 준 표현의 진폭이 이전보다 더욱 넓고 깊다는 발견이야말로 이번 뜻밖의 탐방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201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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