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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0 (19: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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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秋전을 보고



낙엽이 분분히 흩날리던 지난 11월 15일, 미술탐구반 학생들과 함께 ‘국박(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가을, 秋-유물 속 가을 이야기 전》을 보았다. 이 전시는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가을 특별전으로 가을을 소재로 한 조선시대 회화와 서간류, 한시와 시조 등을 모은 전시였다.
전시 폐막 하루 전에 보게 되었는데 질적 측면에서 내실 있는 전시회였다. 뜻밖에도 명품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먼저 이번 전시회의 최대 화제작인 이인문(1745~1824?)의 <강산무진江山無盡>도가 특별 제작된 긴 진열장에 들어 있었다. <강산무진>은 길이만 8m 56cm에 달하는 두루마리 그림이다.(*전체 길이는 9m 15cm이며, 그림 부분만 8m 56㎝임)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8m 18cm 길이인 현재 심사정의 두루마리 그림 <촉잔도권>과 더불어 불교 전통문화유산인 <괘불>도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 회화로 꼽힌다. <강산무진>은 1993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화폭 전체가 공개되었다고 한다. 2005년 박물관의 용산 이전을 기념하는 개관전 때 일부만 공개된 그림을 본 후 처음으로 전체 그림을 보게 된 것이다.  

<강산무진>은 실경이 아닌 상상화로서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사계절을 한 폭에 담아낸 그림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연한 청녹색을 엷게 바림한 화면 위 소나무 숲을 지나 먼 산 아래 들과 강이 굽이치듯 펼쳐지다가 다시 온갖 형상의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지고 가을이 완연한 붉은 나무들이 보인다. 그리고 배들과 포구, 불탑, 마을 풍경도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은 도입부에서는 나무와 사람 집이 좀 더 크면서도 자세하게 묘사되다 점점 개미떼처럼 작아지면서 풍경 위주로 펼쳐진다. 그림 속에는 곳곳에 나귀를 타고 산수를 유람하는 이들부터 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어부, 절벽에 수직으로 길게 드리워진 도르래를 이용해 물건을 나르는 필부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생활풍속도 함께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자연과 일생을 한 화면 속에서 보는 듯한 그림인 것이다.
하지만 <강산무진>은 그림 내력에 얽힌 제문, 제발 등이 없어 구체적인 제작 경위는 현재 밝혀진 바 없는 그림이다. 다만 ‘추사진장’秋史珍藏 이라는 낙관이 찍힌 점으로 미루어 한 때 추사 김정희가 소장하였음을 추정할 뿐이다.

이러한 두루마리 그림은 동아시아에서 즐겨 그린 형식이다. 이인문은 조선 후기 특유의 담백한 화풍으로 이 장대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이 그림은 중국풍의 전통화법의 틀에서 벗어난 18세기 문화부흥기 조선 회화의 훌륭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그림은 한 그림 속에 다시점이 다 구사하는 전통회화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즉 장면 장면마다 때로는 내려다보는 심원법, 또는 올려다보는 고원법 등으로 다양한 시점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땅의 바위나 산의 주름을 나타내는 붓질법인 ‘준법’이 다양하게 구사된 그림으로도 그 특색이 두드러진다.

지난 2007년 봄, 인사동의 《동예헌 30년 전》에 출품된 이인문의 화첩 그림을 보면서부터 이후 이인문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때 조선 후기 회화사에서 이인문의 그림이 그간 과소평가되었다는 점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이인문은 조선 정조 때 단원 김홍도와 어깨를 겨룬 궁중 화원이었지만, 특히 산수화에서 조선 특유의 맑으면서도 바람이 솔솔 부는 듯한 풍광을 매우 잘 나타낸 화가이다.  

그리고 안견 작으로 전해지는 사계절 산수도,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모음인 《풍악도첩》, 정조 대왕의 국화 그림, 부자 사이인 김두량 · 김덕하가 그린 <사계산수> 등 조선회화사 에 중요한 작품으로 나오는 명품들이 줄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벼 타작하는 농민들과 감독관의 관계를 잘 표현한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에 나오는 <타작)> 등 대개의 회화는 평소에는 수장고에 보관되는 그림이어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림들이었다.
이 중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이 남긴 금강산 그림은 실재하는 산수를 직접 화가가 그린 것이다.
겸재 정선의 《풍악도첩》은 그가 36세 때인 신묘년(1711년)에 그린 그림들로 정교한 필치와 묘사에서 그의 초기 화풍을 잘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그간 주로 간송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보았던 만년의 그림들과 그 화풍이 크게 다르다.

그런데 《풍악도첩》에 나오는 이들 초기 그림과 함께 경재 정선이 지금의 경북 포항시 인근에 위치한 청하 현감으로 부임하여 화풍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시기인 그의 나이 58세 때 그린 <내연삼용추>도 함께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그의 화풍 변화를 한 공간 한 장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삼성 리움에 있는 또 한 폭의 같은 제목의 그림과 더불어 이 <내연삼용추>그림은 지난 10여 년간 겸재 정선의 예술세계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된 그림이기 때문이다.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 그림은 지난 90년대 초반이후 전시되지 않아 실물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비단에 그린 소품이지만 겸재는 이 그림에서부터 활달하면서도 거침없는 수직 준법 위주의 필치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금강산 전경을 그린 정수영의 <해산첩>, 단원의 스승이었던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의 <풍악장유첩>도 볼 수 있었으며, 정조의 <국화도>, 국화와 벌을 그린 김희성의 <초총도>,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김득신의 <노안도>도 담백하고 맑은 수묵과 묘법 등이 잘 구사된 그림들이어서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옛 유물이나 그림이라고 해서 무조건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옛 유물 중에는 그야말로 운 좋게 살아남은 매우 관습적인 것도 많다. 따라서 이러한 옛 유물이나 그림에서도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상상 이상으로 전통문화예술의 세계는 깊고 넓으며, 그만큼 이러한 가치는 새로운 예술 또는 삶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은 단지 옛 것을 좋아하는 취미활동 차원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훌륭한 전통회화는 서양의 주류 근대미술처럼 사물의 재현이나 시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활동이 아님을 자각케 한다. 오히려 우리의 전통회화는 철저히 순간순간 우연 속에 생성된 듯한 시간 속 예술이며, 그래서 초월이나 영속성과는 대조적으로 변화의 진폭이 큰 예술성을 띤다. 이 점은 같은 동양권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더 그러한 것 같다.
그러나 이 땅에서 생겨난 훌륭한 전통예술은 삶과 세계에 대해 매우 낙천적인 감성과 기상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살면서 맞닥뜨린 숱한 역경과 슬픔을 넘어선 차원이어서 그런지 경박하지 않다.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속에 한 순간 우듬지가 드러나는 것처럼 가을은 세상과 삶이 더 온전하고도 낯설게 노출되는 '시공(space-time)'의 계절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실감할 수 있듯, 우리의 선조들이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가을이란 계절에 더 풍성한 예술적 성과를 거둔 것도 이러한 이 땅 특유의 풍토와 기후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역시 가을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인가 보다.

                              2008년 11월  17일
  
                                    도 병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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